(상고심 개혁③)"대법관 증원 불가피"…대법원이 기득권 버려야 가능

독일 민·형사 담당 대법관만 128명…프랑스도 125명
"판결 전문성·충실한 심리, 현재 인원만으로는 어려워"
법조계 "대법, 상고심 개혁 원한다면 못 할 이유 뭔가"

입력 : 2022-07-04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국내에서는 상고심 제도 개선 방안으로 대법관 증원이 꾸준히 거론됐지만 번번이 논의에 그쳤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100명 이상의 대법관으로 상고심법원을 꾸려 상고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관을 늘리는 방안이 국민의 법률서비스 수요를 충족하면서 대법원의 충실한 심리도 기대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법관 증원의 근거로 자주 꼽히는 사례는 독일이다. 독일은 우리나라 대법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최종심 법원이 5개다. 일반 민·형사 재판을 하는 연방일반대법원과 행정·재정·노동·사회 분야의 연방전문법원이 존재한다. 연방일반대법원의 대법관 128명을 비롯해, 연방전문법원에 근무하는 대법관급 판사까지 모두 320명이 최종심 법원을 구성한다. 
 
독일은 상고허가제를 도입하긴 했지만 이는 민사사건에만 해당한다. 민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건에서는 국민이 최종심법원의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과 유사한 프랑스 최고재판소 파기원은 125명의 대법관이 근무한다. 민사 3개부와 형사부, 상사부, 노동부로 구성됐다. 행정사건의 최종심은 별도로 존재하는 국사원이라는 사법기관이 맡는다. 프랑스에는 상고허가제가 없다. 프랑스 역시 우리나라보다 10배 이상 많은 대법관이 상고사건을 처리하면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실현하고 있다.
 
이처럼 100명 이상의 대법관으로도 대법원 운영이 이뤄지는 해외 사례와, 과거 국내에서 상고사건을 줄이려는 시도가 거듭 실패한 점 등을 고려하면 우리 대법원도 대법관의 증원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논의에만 그쳤던 대법관 증원이 현실화되도록 심도있게 고려해봄 직하다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김현 변호사는 “우리 국민은 그간 대법원 재판을 받아왔는데 갑자기 대법원이 상고심사제를 도입한다고 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되, 갑자기 대폭 늘리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진단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지난 5월 대법원의 상고심사제 도입에 반대 의견을 밝히며 대법관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논평을 냈다. 민변은 “상고제도 개선은 철저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며 “다수의 상고사건을 충실히 심리하고 중요한 사건에 관해 통일적 법령 해석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다양한 대법관 구성을 통한 대법관 증원안이 1차적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법관 수를 3배 이상 획기적으로 증원해야 한다”며 “1인당 처리해야 할 사건 부담을 줄이고 충실한 심리를 통해 권리를 구제하고, 사회적 다양성을 담아 사회적 가치기준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건을 두고 판결의 전문성을 더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대법관을 늘려야 한다는 근거 중 하나다. 대법관을 늘려 대법원 사건 대다수를 담당하는 소부를 확대하고, 특허나 노동, 행정 등 사건을 전문적으로 전담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심리불속행 판결에 기각된 이유를 사건 당사자에게 자세히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대법관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심리불속행은 민사나 가사, 행정, 특허 분야 상고 사건에서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심리불속행으로 상고 기각시에는 판결문에 기각 이유가 나오지 않아 깜깜이 판결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법관을 늘려 1인당 업무량이 줄어들면, 심리불속행 이유를 자세히 적을 수 있어 법률서비스가 개선될 것이라는 제언이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은 상고심사제나 상고허가제와 유사한 심리불속행 제도를 이미 운영하고 있는데, 기각 이유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며 “사건 당사자가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납득하려면 이유라도 알아야 할 것이고, 대법관을 늘리면 이런 점이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상고사건 숫자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보다는 대법관 수를 늘려 대법원의 권리구제 기능을 제고하는 게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대법관을 늘릴 경우 전원합의체 판결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대법관 전체가 아닌, 민사·가사 사건을 다루는 사법 소부와 형사·행정 영역인 공법 소부끼리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리는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반박도 있다. 또는 각 소부에서 대표성을 띠는 대법관 일부를 선발해 전원합의체와 유사한 협의체를 꾸리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국의 사례를 보면 소부간 협의체를 꾸리는 연합부가 제도화돼 있고, 우리도 충분히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1년에 몇 건 되지 않는 전원합의체 판결 때문에 대법관을 늘릴 수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대법관 증원이 상고심 개혁의 우선과제로 제시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거듭 좌절된 이유는 대법원 스스로가 기득권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된다. 대법관을 소수로 유지해야 대법원과 대법관 권위가 높아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대법원이 업무부담 경감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상고사건을 줄이는 데에만 집중할 이유가 없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관 숫자가 많아지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위상이 낮아질 수 있다”며 “그런 우려가 없다면, 업무부담을 줄이겠다는 대법원이 대법관을 2배든 3배든 늘리는 데에 찬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뉴시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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