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 노사관계 형성 과제

입력 : 2017-11-09 오전 6:00:00
지난 11월 3일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주최한 추계 학술토론회가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개최되었다. 주제의 민감성 때문이지 과거 토론회와는 사뭇 달리 참석자들이 꽤 많았다. 이번 토론회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핵심이슈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큰 주제 아래, 세부 세션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세 가지 정책 이슈를 다루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발표자와 토론자들 사이에 입장 차이는 뚜렷했지만 현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정책의 방향에는 공감의 폭이 깊었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시장을 지배해 왔던 경쟁과 효율, 노동유연성에 쏠린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미래의 노동정책 방향은 공정성과 연대,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모아졌다. 물론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화 정책 추진의 컨트롤타워 부재,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 대책, 노동시간 규제에 대한 국회의 직무 태만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토론자로 참석했던 필자는 새로운 노사관계의 형성을 위해서는 노사정간 문제의식의 공유 및 개방적 토론,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대화 및 합의, 노사관계 주체인 노사의 책임성 높이기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먼저, 문제의식의 공유 및 개방적 토론은 노사의 불신 해소를 위한 출발점이며 '전부 아니면 무(all or nothing)'에서 벗어나 공통 이익을 찾아가는 첫 걸음이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 한국의 노동은 역주행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남용, 노동시장 양극화, 청년 실업 및 저임금노동의 확산 등이 그 지표들이다.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이룩한 경제성장의 빛 보다는 그림자에 주목한다. 대한민국을 헬 조선이라 부른다. 비정규노동의 확대는 기업 차원에서는 노동유연성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고용불안정의 심화, 저임금확대 및 사회 불평등을 악화시켰다. 개별 기업의 이익 추구가 총자본의 이해관계와 충돌한 대표 사례이다. 고삐 풀린 고용유연성에 대한 맹신은 사회적 갈등과 대립만 증폭시켰다. 노사의 공통 이익에 주목하면 유럽 연합의 유연안정성 모델에 합의할 수 있다. 유연안정성 모델은 유연성과 안정성의 균형을 이루며, 유연성에 대한 경영의 요구와 안정성에 대한 노동의 요구를 동시에 구현한다. 철저한 규제 속에서 유연성이 허용되는 '관리된 유연성(regulated flexibility)'이라 부를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적 대화의 추진이다. 고용 및 경제 위기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대화에 주목한다. 일자리의 위기, 노동시장 양극화의 심화는 이제 국가적 어젠다가 되어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고르게 일할 기회를 누리고 경제성장의 몫을 분배받으며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꾸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개혁을 향한 비전과 정책목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를 지닌다. 오늘날 한국 사회 위기의 근원인 총체적 고용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노사정, 시민사회, 전문가 등 모든 사회 주체들이 대화의 테이블에 나와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지만, 사회적 협력 및 신뢰 자본의 축적 계기이다. 사회적 대화는 다원주의 정치체제를 넘어 역사적으로 대표성과 민주성에 기반을 둔 민주적인 정책결정의 진화된 형태이다. 사회적 대화가 위기 시에 위기극복의 필수적인 수단이라는 점이 수많은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어떤 방식의 타협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폭넓은 사회적 지지의 획득이다.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경제적 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 중재역할과 능동적 주도이다. 사회적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합의가 아닌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 관리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현행 노사정위원회는 해체되고 다시 건설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사의 책임 및 주도성 확보이다. 한국 노사관계의 특징은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크다는 점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노사관계의 주도적 행위자는 정부였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노동정책은 널뛰기를 했다. 정부 주도의 노사관계는 단기적으로 효과가 큰 것처럼 보이지만,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며 노사의 자율 역할을 축소시킨다. 노사 모두 정부 뒤에 숨어 자신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정부를 앞장세운다.
 
이 결과 노사관계의 핵심 주체인 노사의 자율성과 책임성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이제 노사가 주도적으로 고용체제 및 일자리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행복한 일터의 구성 요소는 무엇인가. 괜찮은 일자리의 창출 방안은 어떻게 가능한가. 저성장 시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가능한가. 노사 모두 앞에 떨어진 사회적 과제이다. 노사 파트너십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숙명과 같은 짐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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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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