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삼성'이라는 이름값의 무게

입력 : 2018-10-18 오후 2:32:21
"삼성전자가 그런 제품을 만든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틈새시장 개척으로 생활가전 사업의 돌파구를 마련할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삼성전자 고위 임원의 답이었다. 무엇을 하기에도, 안 하기에도 애매한 고민이 묻어있다. 
 
한때 삼성전자 간판이었던 생활가전 사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쟁사인 LG전자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극명해진다. 전체 매출 규모로만 따지면 삼성전자가 LG전자보다 월등히 높지만 가전사업만 놓고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삼성전자 CE부문 매출은 45조1100억원으로 LG전자(H&A·HE사업본부)보다 10조원가량 많지만 영업이익은 LG전자가 2조7860억원으로 1조6500억원에 그친 삼성전자를 앞섰다. 올해는 그 격차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가전사업에서 3조원 이상의 이익을 일굴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삼성전자는 1조4300억원에 그칠 것으로 관측된다. 
 
LG전자의 도약은 '조성진 효과'로 지칭된다. 프리미엄 전략으로 이익 극대화를 실현하는 동시에 새 시장을 개척하는 혁신적인 제품 역량도 강화했다. 삼성전자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플렉스워시(세탁기), 그랑데(건조기), 에어드레서(의류청정기) 등을 내놓으며 대응했다. 그런데 자꾸 LG전자를 따라하는 모습이다. 플렉스워시는 통돌이세탁기와 드럼세탁기를 결합한 'LG 트윈워시'를 변형한 듯하고, '국내 최초 14kg 대용량'이라는 그랑데는 LG전자가 선도자로 나선 전기건조기 시장에 슬쩍 발을 들이는 모습이다. '스타일러'에 정면으로 맞서는 에어드레서의 경우 "기술이 없었던 게 아니라 시장 수요가 커지길 기다렸다"고 했지만 왠지 옹색하게만 들린다.  
 
삼성전자가 향후 소비 타깃으로 삼으려는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설명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어떤 세대와도 다르다"며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들을 겨냥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말하고 싶은 것은 정말 많지만 제품이 나오면 봐달라"는 설명도 답답하기만 하다. 인공지능(AI) 기술의 한 축으로 꼽히는 로봇사업 전망에 대해서도 "AI의 브레인에 해당하는 플랫폼이 우선 구축돼야 한다"는 말로 슬쩍 빠져나간다. 
 
어쩌면 삼성전자 이름값에 걸맞는 깜짝 놀랄 만한 제품을 내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 '우와'라고 탄성을 지르지 않아도, '최초·최대'라는 수식어를 굳이 달지 않아도 된다. 사소해 보이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7일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의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에서 '관리의 삼성'이 아닌 '창의의 삼성'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가전사업 전략에서도 고정관념이 아닌 창조 DNA가 부활의 열쇠가 될 수 있다. 
 
김진양 산업1부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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