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무부가 가짜뉴스를 엄단하겠다며 대책을 발표했다. 허위정보로 판단되면 신속한 수사 체계를 구축하고, 중대 사안은 고소·고발 이전이라도 검찰이 먼저 수사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대책에는 인터넷 허위 정보에 대한 삭제요청권을 법으로 두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정부 의지에 따라서는 언론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도 생겼다. 법무부 발표 이전 이낙연 총리는 "가짜뉴스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공적(公敵)"이며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고 사회의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이라고 비난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허위조작정보는 보호받아야 할 영역이 아니다"라며 좀 더 강력한 근절 대책을 주문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현 정부의 문제의식은 일면 합리적 대응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언론 또는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의도적이며 체계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트리는 세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별 사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팩트 자체를 조작해서는 안 된다. 특정 의도를 갖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짜깁기해서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포시키는 것은 범죄행위다. 가짜뉴스의 생성과 유통의 주체가 개인이 아니고 조직이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특정 조직의 구성원들이 반사회적인 특정 목적을 위해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사실 가짜뉴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짜뉴스는 늘 있어왔고 개인이나 조직에 의해 생성되고 유통되어 왔다. 유언비어도 그중 하나다. 어떤 의도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저잣거리를 휩쓸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때로는 해방감을 때로는 불안감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최근 가짜뉴스는 이전의 가짜뉴스와는 두 가지 면에서 차별성이 있다. 하나는 제대로 된 정보·뉴스 플랫폼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유튜브가 대표적이다. 유튜브는 누구라도 콘텐츠를 업로드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이지만 사람들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을 비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콘텐츠에 동조하게 된다.
두 번째 차별성은 전선(戰線)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가짜뉴스라고 발표한 사례들을 보면 대부분 그 의도가 쉽게 드러난다. 이명박, 박근혜 집권 시절에는 두 대통령과 당시 국가정책 등에 대한 가짜뉴스들이 많았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문 대통령과 현 국가 정책에 대한 가짜뉴스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남북문제, 북한 소식 등 사회적 파장이 클 수 있는 뉴스들이 사실 확인도 없이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 나오는 가짜뉴스도 있다. 주로 동성애자, 난민, 외국인 노동자, 이슬람에 대한 혐오를 목적으로 만들어 유포되는 가짜뉴스들이다. 가짜뉴스 대부분이 처음부터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렇게 분명한 의도를 갖고 콘텐츠를 만들어 개방형 플랫폼에 업로드시켜 사람들에게 유통시키는 것이 최근 가짜뉴스가 이전의 가짜뉴스와 다른 점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부 관련 부처에서 마음만 먹으면 콘텐츠 최초 게시자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찾아내 관련 법에 의거, 고소나 고발할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통시킨 사람을 처벌하면 가짜뉴스는 더 이상 생성되지도 유통되지도 않을까. 아니면 최소한 지금보다 현저히 줄어들까. 정부 공무원들을 제외하고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사람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표현의 규제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확장시킨 경우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가짜뉴스가 소비되는 이유는 진짜뉴스가 소비되는 이유와 동일하다. 둘 다 소비용 콘텐츠일 뿐이다. 뉴스가 정부의 홍보용 채널을 통해 전달되는 지침 수준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채널을 통해 뉴스가 소비되는 시대에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구별한다는 것은 의미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 정치적 성향, 종교, 지역, 계층 또는 우연히 이런저런 콘텐츠를 선택해서 보고 즐긴다. 선택한 콘텐츠가 가짜뉴스일 수도 있고 진짜뉴스일 수도 있다. 콘텐츠 소비자들은 자신의 판단과 신념에 따라 자신이 소비한 콘텐츠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 콘텐츠 제작자가 되기도 한다.
생물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콘텐츠 역시 사회 생태계 안에서 생성되고 유통된다. 특정 콘텐츠가 유통되기 이전에 이미 사회 생태계 안에 그 콘텐츠를 수용할 환경이 조성돼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면 어떤 뉴스라도 바로 잊힌다.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채널이 많아지고 그 영향력이 커지면 가짜뉴스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가짜뉴스 자체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가짜뉴스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지만, 가짜뉴스 자체는 역설적으로 한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민주주의는 전진한다.
김홍열 성공회대 겸임교수(firrenz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