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서해에 남북경협 새 모델 만들자

입력 : 2019-02-28 오전 6:00:00
최근 2000년대 초반 북중 접경지역에서 중개무역을 했던 사업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한반도 평화정착 무드에 대한 감회를 경제적 관점에서 털어놓았다. 그는 "2000년대만 해도 북한 관료들을 만나면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다"며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에만 한참이 걸렸다"고 말했다. 물자는 정부가 공급하는 사회주의식 경제관에 묶여 시장경제체제의 기본 틀을 이해시키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북한에 이른바 장마당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가 조금씩 스며들면서 주민뿐 아니라 관료들도 경제적 사고 방식이 상당히 오픈됐다는 게 이 사업가의 말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가 자리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의 중재자를 자청하고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 경협 지렛대' 역할을 한국이 하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북한 경제가 개방된다면 국제기구와 국제자본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참모들에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단순한 비핵화를 넘어 실질적 남북경협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화두는 북한의 경제발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경협은 어떻게 추진해야 할 것인가. '동해권 에너지 자원벨트', 서해안 산업 물류벨트', '비무장지대(DMZ) 환경 관광밸트'의 'H'축 구상이 정부가 내놓은 계획이다.
 
이 중 주목되는 것은 서해안 산업 물류벨트다. 서해안은 2000년 이후 남북이 군사적으로 충돌이 잦았던 지역이다.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아직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던 곳이다. 또 북방한계선(NLL)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 곳에 '서해안 남북 경제 특구'를 조성해 통일 경제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해 볼 필요가 있다. 백령도와 연평도, 인천, 북한의 황해남도 강령을 연결하는 구역이 최적의 장소다. 이렇게 되면 연평도에서 인접한 북한의 무도, 갈도, 장재도, 석도, 소수압도, 대수압도 등이 모두 특구에 들어간다. 
 
우선 원화와 달러 등이 통용되는 경제 자치구 형태로 인적·물적 교류를 허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북한의 주요 경제개발계획에 포함돼 있는 '강령 국제녹색 시범구 개발' 사업에 우리 정부와 기업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전개해야 한다.
 
특히 과거 퍼주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남북경협의 새로운 형태를 테스트 해 볼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다. 한정적 지역이지만 인적·물적 교류에 이어 원화나 달러 등의 금융통일이 이뤄지면 통일한국의 경제 통합을 미리 내다볼 수 있을터다.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시장경제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군사적 충돌지역의 평화구역 변모라는 상징성도 상당하다. 또 연평도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실향민들이나마 고향에 다녀올 수 있게 된다면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수도 있다. 이산가족상봉을 이 지역에서 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해안의 북한 강령지구는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후 처음으로 개발 계획을 발표한 곳이다. 그만큼 북한도 개발에 관심이 크다는 뜻이다. 단순히 부지를 마련해 우리 기업이 들어가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형태의 경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유로운 왕래와 교류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수 있다면 오랜 시간 유리된 남과 북의 경제 통합은 물론 평화통일의 길도 한층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특구를 남북이 공동 관리를 하면 중국 어선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어족 자원이 급격히 줄고 있는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 분명하다. 
권대경 정책부장 kwon21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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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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