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딜레마'에 빠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문재인정부 적폐 수사' 발언이 정치보복 선언으로 풀이되며, 대선 구도가 기존 '이재명 대 윤석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세한 확전 양상으로 치닫게 됐다.
이 후보는 이런 구도 전환이 반가우면서도 부담을 안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에 대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국민들로서는 검찰 출신인 윤 후보 발언에 대한 반감과 함께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그간 이 후보 지지를 주저하며 관망세를 유지하던 일부 친문과 호남의 빠른 결집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이 후보로서는 더 이상 문재인정부와의 차별화가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13일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윤 후보의 발언 이후 미완성이었던 진보진영의 결집이 마침표를 찍은 것으로 해석됐다. 이날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발표한 2월 2주차 여론조사(지난 6~11일 조사, 성인 3040명 대상)를 보면, 이재명 41.4% 대 윤석열 38.4%로 상황이 역전됐다. 민주당 지지율도 41.1%까지 오른 데 비해, 국민의힘 지지도는 32.6%로 뚝 떨어졌다.
특히 일간 집계를 보면 윤 후보의 발언이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윤 후보가 '적폐 수사' 발언을 한 9일 이후 이 후보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윤 후보는 7일만 해도 43.4%로 강세를 보이다가 10일 41%, 11일 38.4%로 급락했다. 반면 이 후보는 7일 39.2%에서 시작해 8일(36.8%)과 9일(36.7%) 약세를 이어가다 10일 39.1%에 이어 11일 41.4%로 급상승했다.
또 이날 서던포스트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12일 하루간 성인 1015명 조사)도 흐름은 비슷했다. 이 후보는 지난 조사(31.7%)보다 3.3%포인트 상승한 35%였으며, 같은 기간 윤 후보는 36.8%에서 1.3%포인트 떨어진 35.5%를 기록했다. 두 후보 간의 격차는 불과 0.5%포인트로 초접전이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앞서 윤 후보는 지난 9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적극 동의했다. 정치보복 우려에 대해서는 "누가 누구를 보복하나"라며 "그러면 자기네 정부 때 정권 초기에 한 것은 헌법에 따른 것이고, 다음 정부가 자기네들의 비리와 불법에 대해 한 것은 보복인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우상호 총괄선대본부장은 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문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 우려가 현실로 확인됐다"며 "선대위는 현 상황을 비상시국으로 엄중히 인식하고 단호히 행동하겠다"고 했다. 소속 국회의원 172명 전원은 10일 의원총회 이후 성명서를 통해 “단순 망언으로 치부할 수 없다”며 윤 후보의 사죄와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특히 이들은 “국민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수사, 정치보복의 결과를 똑똑히 목도했다”며 “정치검찰이 어떻게 없는 죄를 만들어내고, 어떻게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불행을 똑똑히 지켜봤다. 다시는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2일 대전 유성구 e스포츠경기장 드림아레나 앞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선 관련해 엄정한 정치중립과 공정관리만 당부하던 문 대통령도 가세했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참모회의에서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며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평소 어법과는 확연히 온도차가 있는 '격노'였다.
문 대통령까지 뛰어들면서 요지부동이던 표심의 결집도 가속화됐다. 우상호 본부장은 지난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을 도저히 못 찍겠다'고 했던 분들에게 연락이 온다. '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그런 문제를 따질 게 아니다'라고 한다. 상당히 위기의식을 느끼고 움직이는 것 같다"고 친문과 호남의 달라진 움직임을 전했다. 우 본부장은 그간 "문 대통령을 지킬 사람은 이재명 뿐"이라며 주위 설득에 애썼다. 여기에 이낙연 전 대표가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선대위에 합류하는 시점과 윤 후보의 발언이 묘하게 겹치면서 진영 결집에 힘이 붙었다.
이재명 후보도 문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12일 대전·충청 일정 곳곳마다 "노 전 대통령이 그 험난한 길을 가셨는데 지켜주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똑같은 후회를 결코 두 번씩 반복할 수 없다"면서 "정치는 복수혈전의 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이 후보 모두 노 전 대통령까지 소환하며 진영 결집은 물론 부동층의 표심 잡기에 애쓰는 모습이었다.
유일한 걱정은 정권교체를 원하는 심판론이다. 각종 여론조사마다 정권교체 심리가 과반을 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가세는 정권교체 여론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특히 '이재명의 민주당'을 천명하며 부동산정책과 코로나 경제방역 등에서 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 각을 세워온 이 후보로서는 문 대통령과 한 배를 타게 되면서 더 이상 차별화가 어려워졌다. 일각에서는 이를 노린 윤 후보 측의 전략적 발언이라는 해석도 내놨지만, 문 대통령의 엄포 이후 윤 후보가 "우리 문 대통령님"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내 사전에 정치보복은 없다"고 해명하는 것에 비춰볼 때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보인다.
전문가들은 일단 이 후보로서는 진영 결집을 최대한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 민주당 내에서도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도와 이 후보의 지지율 간 격차를 들어 5~7%가량이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친문, 호남 표심으로 해석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소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이 후보는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큰 난제였다"며 "이도 저도 제대로 못해 지지율이 30%대로 갇혀버렸는데, 차라리 친문과의 결집을 통해 조직세를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실제로 진보진영 지지층 결집이 가능해졌다"며 "문제는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 중도층에 영향을 준다면 확장에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참배를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