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이재용 회장의 내공을 보고싶다

입력 : 2022-11-09 오전 6:00:00
이재용이 결국 회장 칭호를 달았다. 지난달 27일 삼성전자 이사회 의결을 거쳐 지난 1일 정식으로 회장에 올랐으니,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의해 부회장 직함을 단지 10년 만의 일이다.
 
이재용 회장의 승진은 사실 특별히 새로운 것이 없다. 이미 고 이건희 회장 시절부터 차근차근 준비돼 온 일이다. 1994년에서 1996년까지 61억여원의 증여를 받아 주식을 확보한 후 이재용 회장 승계를 위한 대장정이 이어져 온 것이다.
 
그사이 참으로 많은 사건이 벌어졌다. 무리한 승계작업을 위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가 동원되기도 했고, 그 결과 2008년 삼성특검이 발동되기도 했다. 2014년 고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강행되고,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다. 이 때문에 이재용 회장은 특검에 의해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고 콩밥을 먹기도 했다.
 
지난날을 자꾸 추궁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애석함이 크기 때문이다.
 
고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반도체를 비롯한 IT 사업에 집념을 쏟아부어 이룩한 성과는 누가 뭐래도 엄청난 것이다. D램 반도체와 스마트폰, TV와 디스플레이 등은 지금 세계 정상에 올라서 있다. 브랜드가치는 3년 연속 세계 5위를 차지했다. 그런 성과는 그 누구도 결코 폄하할 수 없다.
 
2000년대 초에는 김대중 정부의 정보화정책과 어우러지면서 한국이 세계 최고의 정보산업 국가로 도약하는데 크게 한몫했다. 오늘날 삼성그룹과 한국의 모습은 상당 부분 고 이건희 회장이 이룩한 성과 위에 세워진 셈이다.
 
그렇지만 고 이건희 회장의 그런 노력과 성과는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빚어진 많은 무리수 때문에 가려진 것이 사실이다. 이건희 회장은 그 무리수로 인한 비판과 비난을 뒤집어쓴 채 유명을 달리했으니 애석한 것이다. 굳이 아들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더라도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를 마다한 것이다.
 
이재용 회장은 선친의 그런 영광과 그림자를 고스란히 물려받게 됐다. 그렇지만 이재용 회장은 아직 고 이건희 회장 수준의 역량을 제대로 입증해 보인 적이 없다. 2000년대 초반 독자적으로 인터넷 사업을 시도해 봤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재용 회장이 스스로의 실력을 보여줄 때이다. 정상에 올라있는 사업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한편 아직 미약한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더욱이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디램 가격의 하락으로 말미암아 이익이 줄어들고 주가가 하락하는 등 최근 다소 고전하는 듯하다. 이럴 때 회장에 올랐으니, 그동안 축적해 온 내공을 보여주기에 오히려 좋을 때이다.
 
주변 여건도 결코 나쁘지 않다. 이를테면 최근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전례 없는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는 법인세나 규제 완화 등 전방위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반도체 특성화대학원 3곳을 내년에 지정하는 등 앞으로 10년 동안 3만명의 인력을 양성한다는 계획까지 수립했다.
 
또 지난 4일에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첨단전략산업 정책 지휘기구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도 구성했다. 앞으로 투자와 인력 양성, 규제개혁, 금융 등 관련 정책과 계획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위원회에서는 먼저 반도체와 2차전지, 디스플레이 3개 산업의 15개 세부 분야를 국가첨단전략기술 분야로 선정했다. 이들 3개 산업 모두 삼성그룹이 보유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지원에 대해 과거와 달리 요즘은 국민의 지지도 두텁다. 이들 첨단전략산업의 경쟁력 우위를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재용 회장의 승계 과정에서 빚어진 많은 무리수에 대한 기억도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이 정도면 최상의 여건이 갖춰진 것 아닐까?
 
정부의 이런 지원과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데도 사업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영자는 사실 무능하다고 좋을 것이다. 더 이상 핑계 찾기도 어렵다.
 
더욱이 지금 삼성그룹 안팎에는 실력과 경험을 갖춘 전문경영인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이제 모든 것은 이재용 회장 본인이 하기 나름이다. 잘됐을 경우의 영광도 실패했을 경우의 쓰라림도 남의 것이 아니라, 이재용 회장 스스로의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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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