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우리나라 업체가 개발한 디지털 치료기기의 첫 번째 허가가 나왔습니다. 새로 추가된 산업군에 있었던 규제 혁신이라며 반기는 업계의 목소리가 뒤따릅니다.
국내 1호 디지털 치료기기 'Somzz' 구동 화면. (자료=식약처)
식약처, 국내 1호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늘 우리나라 제조업체인 에임메드사가 불면증 증상 개선을 목적으로 개발한 디지털치료기기 'Somzz'의 품목허가를 결정했습니다."
오유경 식약처장이 15일 오전 브리핑에서 한 말입니다.
이날 식약처가 허가한 디지털 치료기기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입니다. 개발사는 면증 증상 개선을 위해 불면증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의 하나인 불면증 인지행동 치료법을 모바일 앱으로 구현했습니다.
이번 허가는 우리나라에서 나온 첫 번째 디지털 치료기기 상업화 사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동시에 불면증 환자에게 약물치료법 외 다른 치료 수단을 제공한다는 의의도 있습니다.
김재진 대한디지털치료학회장(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은 "이번 국내 첫 디지털 치료기기의 허가로 불면증 환자의 치료 기회 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 디지털 치료기기가 다양한 질병에 의약품 이외에 새로운 치료 수단으로써 임상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식약처 전경. (사진=식약처)
정부 지원 발판 삼아 단숨에 의료 현장에서 활용
국내 1호 디지털 치료기기 탄생의 배경에는 정부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이번 허가가 있기 약 3년 전인 2020년 8월 식약처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한 정의·판단기준·판단사례와 허가 시 제출하는 기술문서의 작성 방법과 제출 자료 범위 등을 담은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바 있습니다.
이어 식약처는 이듬해 12월 맞춤형 기술 지원을 위해 불면증 개선 디지털 치료기기 안전성·성능평가 및 임상시험계획서 작성 가이드라인을 포함해 개별 디지털 치료기기에 특화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식약처 가이드라인이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도움이었다면, 개발 이후에는 관계부처의 협업이 실사용 마중물 역할을 맡았습니다. 작년 10월 혁신의료기기 통합 심사·평가 제도가 마련돼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 것이죠.
혁신의료기기 통합 심사·평가 제도는 혁신의료기기의 신속한 의료 현장 진출을 위해 종전에 기관별 순차적으로 진행됐던 △혁신의료기기 지정(식약처) △요양급여대상·비급여대상 여부 확인(건강보험심사평가원) △혁신의료기술평가(보건의료연구원)를 동시에 통합 검토해 허가 즉히 의료 현장에 진입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식약처에 따르면 이를 통해 혁신의료기기 허가 후 의료 현장에 투입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90일에서 80일로 80% 단축됐습니다.
식약처는 이번 허가 이후 오는 2027년까지 약 10종의 맞춤형 디지털치료기기 임상·허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추가로 개발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섭식장애 등에도 활용할 방침입니다.
'뷰노메드 딥카스' 운영화면 예시. (자료=뷰노)
디지털 앞서 AI 의료기기에도 훈풍…업계 "환영"
디지털 치료기기처럼 이전에 없던 제품의 상업화를 앞당기려는 정부 차원의 시도는 이미 한 차례 있었습니다.
뷰노(338220)의 인공지능(AI) 기반 심정지 예측 의료기기 '뷰노메드 딥카스'의 선진입 의료기술로 확정입니다.
AI 의료기기처럼 이전에는 없던 제품이 허가를 받으면 급여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기존 급여 코드 부여와 새로운 코드 생성이라는 갈림길을 맞습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기술이나 유형의 의료기기라면 명확한 구분이 어렵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전에 없던, 신의료행위라고 판단하면 공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으로 넘어갑니다. 이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신의료행위의 의학적 필요성을 검토해 △혁신의료기술 △제한적 기술 △평가 유예 여부를 결정합니다. 뷰노메드 딥카스의 경우 평가 유예 2년과 신의료기술평가 약 1년 등 최대 3년간 비급여 사용 확정으로 최대 3년간 의료 현장에서 비급여로 사용되며 임상적 근거를 쌓을 수 있게 됐습니다. 국내 의료 AI 업계 최초 사례죠.
AI 의료기기의 실사용과 임상적 근거 축적을 위한 결정부터 국내 첫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까지 이르는 과정을 지켜본 업계는 반색했습니다. 신약개발이나 연구에 비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분야에서 정부 지원이 빛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혁신 의룍기 개발에 중요한 데이터의 양과 질이 우수하고 정보통신기술 수준도 높아 새로운 유형의 의료기기를 개발하기 아주 좋은 환경을 갖췄다"며 "새로 부상하는 산업에서 시장의 흐름을 선도하려면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현재로선 만족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혁신의료기기 개발을 돕고 의료 현장 투입 시기를 앞당기는 지원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면서도 "기술력을 갖췄지만 규모가 영세한 기업들이 연구개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정부 과제가 지금보다 늘어날 필요도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