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9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4.16기억교실에서 유가족이 책상 위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윤혜원 기자] “친구들아, 많이 지치고 힘들 부모님들과 나를 꿈속에서라도 나와서 껴안아 주고 가. 많이 보고 싶다.” 16일인 이날로부터 꼭 1년 전인 지난해 4월 16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8주기 기억식에서 ‘생존자’ 장애진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1반 학생이었던 장씨는 응급구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유아교육 교사를 꿈꾸던 그가 참사를 겪은 이후 진로를 바꾼 겁니다. 초기 대응이 잘되지 않아 참사로 번졌던 기억이 자신을 응급구조사의 길로 이끌었다고 장씨는 말합니다.
“계속 봄은 돌아오는데 ‘너희는 언제 돌아올까’ 하는 생각을 해.” “왜 피해자가 책임자를 찾아야 하고 죄를 물어야 할까.” “봄이 오는 신호가 보이면, 어김없이 너희들 생각이 나.” 장씨는 7주기에서도, 6, 5주기에서도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매년 읽어내리는 편지도, 응급구조사로서의 삶도 장씨에는 기억의 증표입니다.
이태원참사로 되살아난 '기억 투쟁'
올해로 9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기억 투쟁’이 벌어지는 사건이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입니다. 지난 2월 5일은 이태원 참사 100일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참사 유가족들은 서울광장에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차렸습니다. 이곳은 참사 직후 정부가 합동분향소를 마련했던 자리입니다.
지난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 과정에서 발생한 육교 압사 참사의 유가족인 미키 기요시(왼쪽), 시모무라 세이지 씨가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 추모 메시지 앞에서 헌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울광장 이태원 분향소의 설치에 서울시는 지난 11일 변상금 2899만원을 부과하고 분향소의 강제철거를 시사했습니다. 분향소 설치가 법에 위반된다는 설명과 함께였습니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참사 기억을 지우려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분향소는 유족들에게 참사는 물론, 참사가 남긴 숙제를 기억하기 위한 상징적인 장소였던 겁니다.
참사는 과거의 사건이 됐지만, 참사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참사를 경험한 당사자나 그 가족들이 이를 기억하려 하고 기억할 수밖에 없는 건, 단순히 사건이 가한 충격이 그들을 괴롭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시간은 흘렀지만 사건 자체는 미완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외치는 지점이 있습니다.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개시된 사회적참사특별위원회(사참위)의 활동이 지난해 9월 2일 종료됐습니다. 그러면서 사참위는 3년 6개월에 걸친 조사 활동 결과를 종합한 보고서를 발간했죠.
5만명 이상 동의했는데…특별법 외면하는 정부여당
이에 대해 세월호 유족들은 “사참위 보고서가 진상규명에 실패한 것은 정부가 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해 우리 스스로 진실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부가 진실을 찾겠다며 조사 기구를 출범했지만, 결과가 미진했다는 평가 속에 진상규명의 몫까지 유족들에게 돌아간 셈이죠.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159명이 희생된 참사가 난지 반년이 다 돼가는 시점까지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지만, 정치권의 논의는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렇게 국회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유가족은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5만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냈습니다. ‘이태원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에 대한 동의였습니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진상규명특별법 입법 촉구 야3당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태원참사특별법은 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권의 세 개 당이 준비 중입니다. 이 특별법에는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 피해구제심의위원회 설치, 추모공원 조성과 추모기념관 건립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야권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이태원참사특별법 입법 촉구 간담회를 열고 이번 주 중 특별법을 발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활동이 종료된 지 석 달 만입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특별법 제정에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윤혜원 기자 hw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