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2대 국회, 쏟아진 법안만 벌써 212개…비용추계 고작 '1건'

비용추계 미대상 사유서도 '10건'뿐…여야 '실적 쌓기 경쟁'에 입법 속도전

입력 : 2024-06-07 오후 5:40:29
제22대 국회 임기 시작일인 지난달 30일 국회의사당에 개원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유지웅 기자]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8일 만에 212건의 법안이 발의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이들 법안 중 입법에 따른 재정 소요 규모를 예측하는 자료인 비용추계서가 제출된 것은 단 1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동안 여당은 정부 예산의 '건전재정'을 강조하고, 야당은 현 정부의 '세수 펑크'를 비판해 왔는데요. 정작 입법에 있어선 여야 모두 필요한 재정 규모조차 사전에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법안을 발의한 겁니다. 의원들이 '실적 쌓기'를 위한 입법 속도전에 매몰됐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의안 접수가 시작된 지난달 30일부터 이날 오후 4시까지 8일간 총 212건의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같은 기간 238건이 접수된 21대 국회와 비교하면 26건 적었지만, 135건이 발의된 20대 국회와 비교하면 77건 많았습니다.
 
민주 당론 1호 '전 국민 25만원'조차…비용추계서 '누락'
 
문제는 이들 법안 중 상당수가 재정 투입이 필요한 법안임에도 기본적인 비용추계조차 없이 발의됐다는 겁니다. 총 212건 중 10건의 법안 비고란에 '비용추계 미대상 사유서'가 제출됐다고 표기됐고, 비용추계서가 첨부된 법안은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울산과학기술원법 개정안'이 유일했습니다. 이 개정안에는 울산과학기술원에 과학영재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김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기 전 국회 예산정책처에 이 법안에 대한 비용추계를 요청했고, 예산정책처로부터 비용추계서 미첨부 사유에 대한 근거 규정을 전달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법안을 의안과에 제출한 후 예산정책처에 비용추계를 요청한 것과 다르게 김 의원은 먼저 예산정책처에 비용추계를 문의한 후 법안을 발의한 겁니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기술적인 추계가 불가능한 경우에 예산정책처에서 공식적으로 미첨부 사유서를 회답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가끔 의원들이 비용추계를 요구할 때 아예 추가 재정 소요가 발생하지 않는 법안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비용추계서 미첨부 사유서를 첨부한 법안 1건과 비용추계 미대상 사유서가 표기된 법안 10건을 제외하고 상당수 의원들은 예산정책처에 비용추계 요구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갈음했습니다. 22대 국회 임기 시작부터 필요 예산을 알 수 없는 '깜깜이' 법안들을 내놓은 겁니다.
 
지난달 31일 김승수 국민의힘이 발의한 '보훈보상대상자 지원법 개정안'에는 보훈보상대상자의 생활조정수당 지급액을 상향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사전에 따로 비용 계산은 돼 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민주당의 경우 이재명 대표를 포함해 171명의 의원들이 당론 1호 법안으로 발의한 '민생위기 극복 특별법'에도 비용추계서는 첨부되지 않았습니다. 전 국민에게 25만원 내외의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법안에 담겼지만, 구체적인 비용추계 없이 예산정책처에 비용추계 요구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김용민(오른쪽)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와 민병덕 정책위 수석부의장이 지난달 30일 국회 의안과에서 민생·개혁 1호 법안(민생위기 특별조치법, 해병대원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도 '세수 펑크' 현실화…여야 모두 '직무유기'
 
국회법 제79조의2 1항에 따르면 의원이 예산상 또는 기금상의 조치를 수반하는 의안을 발의하는 경우 시행에 예상되는 비용에 관해 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나 예산정책처에 비용추계요구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다만 단서 조항에 비용추계 요구서를 제출하는 경우 '위원회 심사 전'에 비용추계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국회법은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안이 시급한 때를 고려해 일단 예산정책처에 비용추계 요구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갈음하고, 향후 예산정책처에서 비용추계서가 나오면 위원회 심사 전 추후 첨부할 수 있도록 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대한 편의를 봐준 겁니다.
 
앞서 2014년에는 비용추계서의 중요성을 강화하기 위해 의원 발의 법안에 반드시 비용추계서를 첨부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국회법을 개정했는데, 이때보다 다소 완화됐습니다. 현실적으로 예산정책처의 인력을 감안했을 때 의원들이 발의한 모든 법안에 대한 비용추계를 담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의원들의 법안 발의 남발에 따른 '보여주기식' 입법 경쟁도 비용추계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세 수입은 125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조4000억원 줄었는데요. 재정을 외면한 채 '묻지 마 입법' 남발에 나선 여야의 직무유기가 '세수 펑크'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박주용·유지웅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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