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미 반도체, 배터리 규제가 발등에 떨어졌는데 계엄령 사태로 외교대응 주체인 당정이 마비됐습니다. 반도체 HBM 규제, 미국 내 반도체, 전기차용 이차전지 보조금 감축 등 재계는 경제외교 공백이 길어져 미국 정책 변수에 따른 타격이 커질 것을 우려합니다.
5일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앞서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한국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제3국에서 만든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규제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중국 상무부는 갈륨, 게르마늄, 안티몬, 초경질 재료 등 민간·군수 이중용도 품목에 대한 미국 수출을 엄격히 통제한다며 맞불을 놓았습니다.
한국 HBM은 미국 수출 규제 대상에 포함돼 리스크에 놓였습니다. 이번 규제 변수를 피해간 국가도 있지만 한국은 대응이 늦어집니다. 반도체 장비 핵심 국가인 일본과 네덜란드의 경우 대처가 빨랐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일본, 네덜란드와 수개월동안 집중적으로 협상을 벌여 보완적인 수출 통제 제도를 수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과 일본 반도체 장비업체 고쿠사이의 중국 매출이 전체 매출의 47%(올해 삼사분 기준), 50%를 차지하지만 직접 규제를 피했습니다.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서 외교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서울역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2024.12.3(사진=연합뉴스)
미국 수출 통제 조치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는 4일 업계 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로 취소됐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외 경제부처 주요 일정도 줄줄이 취소됐습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예정됐던 경제관계장관회의, 소상공인·자영업자 맞춤형 지원 강화 방안, 기업 역동성 제고·신산업 촉진을 위한 경제규제 혁신 방안 등을 논의하려던 계획을 기약 없이 미뤘습니다. 비상계엄 해제 후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들이 사임의사를 표해 이후에도 식물정부가 예상됩니다.
내년 트럼프 2기 출범일인 1월20일까지 혼란 정국이 수습될지 미지수입니다. 야당이 제출한 탄핵소추안에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당론을 채택했고, 탄핵심판 기관인 헌법재판소에 재판관 3명이 공석인 상태라 합의나 결론이 나올지 불확실합니다.
글로벌 불확실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업체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가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른 보조금 수령 절차를 중단했습니다. 이는 보조금 지급 취소 첫 사례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보조금 지급 재검토에 대한 우려를 더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64억달러와 4억5000만달러를 받기로 예비거래각서를 체결한 바 있습니다.
조만간 경쟁력 강화 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석유화학 산업 분야도 산업 구조조정 정부안 발표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지급 약속도 트럼프 2기 변수에 직면했습니다. 게다가 중국과 멕시코, 캐나다에 대한 관세 인상 등 대외적 악재가 산재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스스로 대처하기 힘든 외교 이슈라 당정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하지만 대처방안 협의 대상인 정부가 계엄 여파로 당분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박혜정 인턴기자 sunrigh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