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시진핑 밀월…한반도 다시 ‘4자 구도’

중, 북·러 '밀월' 거리 두기서 다시 '혈맹'
북, 10월 자국 열병식 시진핑 초대 가닥

입력 : 2025-09-04 오후 5:52:58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66년 만에 중국 베이징 톈안먼(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선 북·중·러로 인해 한반도 역학 관계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반서방' 연대 과시에 따른 신냉전의 신호탄은 동아시아 냉전의 출발점이기도 한데요. 북한과 중국은 6년 만에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본격적인 경제·안보 공조 체제를 과시했습니다. 결국 한반도 문제에 있어 남·북·미 중심의 흐름이 남·북·미·중의 4자 구도로 재편될 전망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6년 만의 북·중 회담…다시 한반도 영향력 행사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주년' 열병식 다음 날인 4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전부터 양자 회담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당초 이목을 끌었던 북·중·러 정상회담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귀국에 따라 불발됐습니다. 대신 푸틴 대통령은 북·중과 각각의 회담을 진행하며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북한과 중국의 양자 회담은 2019년 6월 시 주석의 북한 국빈 방문 계기 이뤄진 제5차 정상회담 후 약 6년 만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가 '밀월'을 시작하면서 중국은 다소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승절을 계기로 북·중 관계도 다시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중국은 지난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이징 도착에 맞춰 서열 5위인 차이치 중앙판공청 서기와 왕이 외교부장을 보내 영접했습니다. 전승절 열병식에서는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의 두 손을 꼭 잡는 모습을 연출했고, 이동과 망루에서 바로 옆자리를 내줬습니다. 북한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오는 10월 자국 열병식에 시 주석을 국빈으로 초대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중국은 이번 전승절을 통해 소극적으로 나서던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미 대화를 앞두고 몸값을 높이려는 북한과, 미·중 패권 전쟁에서 한반도 문제를 활용하려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은 영향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1997년 제네바 4자 회담 '연상'…얽힌 역학 관계 
 
이번 전승절은 지정학적 '변곡점'에 해당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특히 북·중·러의 톈안먼 망루 사진은 신냉전의 출발을 알리는 역사의 순간으로 기록됐는데요.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 관계는 한층 더 높아진 '고차방정식'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승절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 때문인데요. 한반도 문제는 남·북·미의 관여를 넘어 남·북·미·중의 관계로 다시 회귀했습니다. 지난 1997년 12월, 남·북·미·중이 모였던 제네바 4자 회담 당시의 상황입니다. 당시는 양자 협상을 추구하는 북·미와 평화 체제 논의를 강조하는 한·중 사이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실질적 진전은 이뤄 내지 못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해오고 있었지만, 북·러 밀착에 따라 다소 소극적이었다"며 "이번 전승절을 계기로 영향력이 다시 복원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남·북·미·중의 역학 관계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우선 대한민국의 경우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피스 메이커'로 치켜세우며 사실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이는 8·15 경축사에서도 드러나는데요. 이 대통령은 당시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이며 주변국과 우호적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한반도"라며 "비핵화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어려운 과제이나 남북,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발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넓혀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현재의 상황이 반영된 4자 회담을 염두에 둔 경축사로 풀이됩니다. 이 대통령은 또 동결→감축→비핵화로 이어지는 3단계 프로세스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전승절을 통해 몸값을 높인 북한의 구상은 다릅니다. 방중 직전 핵투발 수단을 과시한 김 위원장은 이번 전승절을 통해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과시했습니다. 결국 비핵화를 조건으로 하는 제재 완화에서 벗어나려 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미·중 패권 전쟁의 사이에 서서 북·미 직거래 시 협상력을 제고하려는 의도로도 풀이됩니다. 
 
게다가 북한은 러시아의 안보와 중국의 경제라는 뒷배를 확고히 함으로써 외교적 선택의 폭을 넓혔습니다. 핵능력 고도화의 토대를 깐 셈인데, 비핵화를 고리로 한 협상에 있어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 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취임 전후로 반복적인 '러브콜'을 보냈지만 외면당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피스메이커'와 관련해서도 다소 거리가 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다만 미국 입장에서는 대중국 견제를 위해서라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여의 끈을 놓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오는 10월 말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되면, 시 주석과의 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신 군축 협상이 주요 의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요. 양 교수는 "출발은 군축 협상이라도 최종 목표는 비핵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은 이번 전승절을 통해 사실상 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여의 폭을 넓힌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반서방' 연대를 고리로 하는 '반미' 전략이기도 한데요. 북한을 고리로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시 주석이 이번 전승절에서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미·중 협상 과정에서의 '속도 조절'도 감지됩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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