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삼성생명(032830) 등 국내 생명보험사들이 적용해온 국제회계기준서(IAS) 1.19 '일탈회계'와 관련해 국제회계기준 해석 기구가 사실상 해당 해석을 부정하는 잠정 결론을 내린 가운데, 한국회계기준원이 10일 이를 공식적으로 공개했습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계약자지분조정을 별도 부채로 유지해온 기존 회계처리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됐으며, 자본 전환이나 계열사 주식 처분을 전제로 한 보험부채 재산정 등 회계처리 재검토가 불가피해졌습니다.
IASB까지 간 일탈 논쟁… 기준원, 무제한 허용 해석 문제 제기
한국회계기준원은 10일 '일탈회계 질의에 대한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 잠정 결론' 안내 자료를 통해 "일탈은 IAS 1.15 공정한 표시 원칙과 개념체계의 자산·부채 정의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해석이 국제적으로 유일한 정통 해석임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잠정 결론은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산하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가 11월25일 회의에서 위원 14명 전원 만장일치로 채택한 잠정 의제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외부 의견 수렴은 내년 2월6일까지 진행되며, 최종 의제 결정은 내년 상반기 중 확정·공표될 예정입니다.
한국회계기준원에 따르면 이번 사안은 2023년 IFRS17 보험계약 회계기준 도입 당시 삼성생명 등의 생명보험사가 기존 IFRS4 체계의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을 그대로 부채로 유지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들 보험사는 계열사 주식 매각 계획이 없어 IFRS17상 보험부채는 0원이지만, 계약자 보호와 정보 유용성을 이유로 IAS 1.19 일탈 규정을 적용해 해당 항목을 부채로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한국회계기준원은 일탈 규정 역시 IAS 1.15 공정한 표시 원칙과 개념체계의 자산·부채 정의 아래에서만 적용돼야 한다는 해석을 일관되게 유지해왔습니다. 반면 일부 회계법인, 생명보험협회, 일부 학계 인사들은 일탈을 적용하면 개념체계의 자산·부채 정의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이른바 'View 2' 해석을 국내에서 확산시켜왔습니다.
논란이 확산되자 한국회계기준원은 9월26일 영국 런던 IFRS 재단 본부를 직접 방문해 IASB 의장과 IFRS 해석위원장 등을 만나 공식 질의를 진행했습니다. 기준원은 이 자리에서 국내에서 확산된 '일탈 무제한 허용' 해석이 국제적으로도 통용되는지 여부를 직접 문제 제기했습니다.
국제 해석위 "사례도, 영향도 없다", 논쟁거리 아님 확인
이후 IFRS 해석위원회는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각국 회계기준 설정 기구, 글로벌 빅4 회계법인 IFRS 기술팀 등을 상대로 국제 아웃리치를 실시했습니다. 총 16개 기관이 응답했으며, 모든 기관이 "IAS 1.19 일탈 적용 사례는 사실상 본 적이 없거나 극히 제한적으로만 존재한다"고 답했습니다. 제한적 사례에서도 기업들은 IAS 1.15와 개념체계를 준수해 회계처리를 했다는 점이 함께 확인됐습니다.
IFRS 해석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해당 사안은 실무에서 극히 드물며, 해석상 다양성도 존재하지 않고, 재무제표 이용자에게 유의미한 광범위한 영향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별도의 기준 개정이 아닌 잠정 의제 결정 방식으로 정리됐고, 정식 안건 상정도 하지 않기로 만장일치로 결정됐습니다.
한국회계기준원은 "기준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공정한 표시나 개념체계 준수가 필요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제적 절차와 판단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이번 잠정 결론은 IAS 1의 원칙이 이미 충분히 명확하며, 국내 일부에서 주장해온 'View 2' 해석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국내 일각에서는 기준 개정이 없었으므로 삼성생명의 회계처리가 심각한 오류는 아니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IFRS 해석위원회의 절차상 기준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기준이 이미 충분히 명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잠정 의제 결정은 해당 기준 해석에 대해 추가 지침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조치"라고 말했습니다.
기준 개정 없다고 면죄부 아니다…삼성생명 회계처리 '기로'
이로 인해 삼성생명은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을 일탈을 근거로 부채로 유지해온 기존 회계처리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향후 선택지는 일반 부채나 보험부채로 재분류하는 방식, 자본으로 전환하는 방식, 계열사 주식 처분 계획을 전제로 보험부채를 재산정하는 방식 등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다만 일반 부채나 보험부채로의 재분류는 국제 기준상 자산·부채 정의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게 평가됩니다. 계열사 주식 처분을 전제로 한 보험부채 재산정 역시 삼성생명이 유지해온 지분 비매각 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삼성전자 지분 구조와 그룹 지배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부담이 큽니다. 이에 따라 회계업계에서는 계약자지분조정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만 자본 전환이 현실화될 경우, 유배당 계약자 권리 침해 논란과 함께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 이른바 삼성생명법 논의가 다시 본격화될 가능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인 노종화 변호사는 "사실상 삼성생명에만 적용됐던 일탈회계가 국제회계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 IFRS를 통해 다시 확인됐다"며 "금융감독원도 앞으로는 일탈 없이 IFRS17을 원칙대로 적용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회계 논란은 일단락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번 사안의 본질은 삼성생명이 과도하게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문제"라며 "이를 해소하려면 소유구조 개선과 보험업법 개정 등 제도적 해법이 함께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 (사진=뉴시스)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