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수학적 추론’에 접근하는 AI

수학의 난제들, 새 접근법으로 해결
인간을 대체할까? 인간과 협업할까?

입력 : 2025-12-30 오전 11:40:18
수학은 오랫동안 인간 지성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져왔습니다. 새로운 개념을 정의하고, 증명의 방향을 직관적으로 포착하며, 수년간 하나의 문제에 매달리는 과정은 인간 사고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AI가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수학 문제에서 의미 있는 단서와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면서, 수학 연구의 풍경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과연 인간 수학자를 대체할 존재일까, 아니면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새로운 도구로 자리 잡게 될까. 이 질문은 이제 수학계가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쟁점입니다. 미국의 과학 전문 매체 <라이브사이언스(LiveScience)>는 최근 기사에서, 수학 연구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을 조심스럽게 전망했습니다. 
 
램지 수(Ramsey numbers)처럼 경우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학 문제에서는, 인간이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미지=Gemini 생성)
 
인간의 한계 드러낸 난제들
 
과거의 인공지능은 계산 능력은 뛰어났지만, 수학적 추론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대형 언어 모델과 기호 추론 시스템은 이전과 전혀 다른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방대한 수학 논문과 증명 사례를 학습해, 문제의 구조를 분석하고 가능한 증명 경로를 탐색합니다. 단순히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검토할 수 있는 형태의 논증이나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인공지능이 수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탐색해, 인간 연구자가 오랫동안 떠올리지 못했던 접근법의 후보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제안한 사례도 보고됐습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증명을 대신하기보다는,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라이브사이언스>가 언급한 ‘불가능한 문제’는 수학적으로 증명 자체가 불가능한 문제를 뜻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현존하는 인간의 시간과 인지적 한계 안에서는 접근하기 극히 어려운 문제를 지칭합니다.
 
예를 들어 램지 수(Ramsey numbers) 계산이나 고차원 조합기하학(high-dimensional combinatorial geometry) 문제처럼, 경우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영역에서는 인간이 모든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램지 수’는 어떤 규모 이상이 되면 무작위처럼 보이는 구조에서도 반드시 일정한 질서가 나타난다는 원리를 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논리적으로 풀 수 없어서가 아니라, 탐색 공간이 지나치게 커 인간의 물리적·인지적 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에 오랫동안 난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인공지능은 이 점에서 인간과 다른 강점을 보입니다. 피로를 느끼지 않고 대규모 경우의 수를 병렬로 탐색하며, 가능성이 낮은 경로를 빠르게 배제할 수 있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방식이 인간이 말하는 ‘직관’과는 다른 형태의 탐색 전략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공지능의 수학적 활용과 관련해 여러 연구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일부 시스템은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IMO) 수준의 문제 일부를 제한된 조건에서 해결하거나, 인간 연구자들이 설정한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 경로를 제안했습니다. 또한 연구 수준의 문제에서도, 기존 증명을 단순화할 수 있는 보조정리(lemma)의 후보를 제시해 인간 연구자가 이를 검증·발전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보조정리란 복잡한 수학적 논증을 단계적으로 구성하는 데 쓰는 것으로 주요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먼저 증명되는 중간 명제를 말합니다.
 
중학교 학생들이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로 진행되는 수학 수업을 듣고 있다.(사진=뉴시스)
 
옥스퍼드대 수학자 마크 래컨비(Marc Lackenby) 교수는 “AI가 최종 증명을 완성했다기보다는, 연구의 진행 방향을 정확히 알려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독자적으로 정리를 완성하기보다는, 인간 연구자가 집중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엇갈리는 평가 : 대체인가, 협업인가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언젠가는 필즈상 수상자급 수학자를 능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수학자들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낙관론자들은 수학이 결국 형식 논리의 집합인 만큼, 충분한 계산 자원과 학습 데이터가 있으면 인공지능의 능력이 더욱 확장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반면 신중론자들은 수학의 핵심은 문제 해결 능력뿐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선택하고 새로운 개념을 설정하는 데 있다고 강조합니다. 어떤 문제를 풀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고, 연구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며 인공지능은 주어진 목표를 최적화하는 데는 강하지만, 목표 자체를 창조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쟁점은 신뢰성입니다. 인공지능이 제시한 증명이나 논증은 때로 매우 길고 복잡해, 인간 연구자가 모든 단계를 직접 검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증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수학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재 많은 수학자들은 인공지능이 독자적으로 증명을 완성하는 방식보다는, 인공지능의 제안을 인간이 검토하고 검증하는 구조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연구자들은 형식 검증 시스템(formal verification)과의 결합을 통해 오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자를 ‘이길’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수학은 더 이상 인간만의 영역이 아니며, 인공지능의 영향력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가장 추상적인 학문으로 여겨져 온 수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변화는, 인공지능이 과학 전반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게 될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전조일지 모릅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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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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