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곽보연기자] "불황이요? 프리미엄급 가전들은 불황 몰라요."
서울 신촌의 한 대형 백화점 가전 매장. 주부들의 눈이 일제히 한 제품에 쏠렸다. 일명 '이승기 김치냉장고'로 불리는 삼성전자 M9000. 대용량의 프리미엄 김치냉장고였다.
옆 매장에선 너도나도 '김태희 냉장고'를 찾았다. LG전자가 내놓은 900리터급 프리미엄 냉장고다. 유일한 비교대상은 삼성전자의 T9000이었다. 일명 '윤부근 냉장고'.
장기불황의 늪을 프리미엄 바람이 뚫고 있었다. 500만원을 웃도는 최고가임에도 소비자들의 지갑은 열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승부수가 적중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7월 윤부근
삼성전자(005930) 소비자가전부문(CE) 사장은 프리미엄을 의미하는 시리즈넘버 '9000'을 붙인 냉장고 지펠 T9000을 내놓았다. 900리터급 대용량에 '타임리스'라는 고급 디자인을 적용한 이 제품의 출고가는 350만~390만원이다.
이에 질세라
LG전자(066570)는 8월 T9000보다 큰 910리터 대용량의 프리미엄 냉장고 '디오스 V9100'를 출시했다. 이 제품 역시 출하가격이 359만~439만원에 이른다. LG전자의 맞불작전이었다.
프리미엄·대용량 바람은 일반냉장고뿐만 아니라 김치냉장고에서도 일고 있다.
올 4월 삼성은 업계 최초로 508리터 용량의 김치냉장고를 선보였고, 이어 LG전자와 위니아도 500리터급 이상의 김치냉장고를 시장에 내놓으며 추격에 나섰다.
심지어 지난주에는 삼성이 용량을 더 키운 567리터 김치냉장고 지펠 아삭 M9000을 출시했고, LG전자도 20일 용량 565리터의 김치냉장고 '디오스 김치톡톡'로 맞서며 신경전을 이어갔다.
생활가전 시장의 프리미엄 전쟁은 TV와 청소기, 오븐과 같은 주방가전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최대 양판점인 하이마트 판매담당자는 "프리미엄 가전은 불황을 모른다"며 "아무리 가격이 높더라도 살 사람은 사는 게 프리미엄 가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프리미엄급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주된 고객층은 혼수마련을 위해 나온 신혼부부와 50~60대 주부들"이라며 "우리 매장에서는 300만원대의 고가인 냉장고 지펠 T9000가 지난 한달 동안 이틀에 한 대꼴로 팔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냉장고 지펠 T9000은 9월초 기준 전국 판매대수가 2만대를 넘어섰다. 하루 평균 4000대가 판매된 셈이다.
이처럼 대내외 불황 속에서도 프리미엄 가전이 상승세를 그리는 이유는 확실한 수요층을 타겟 삼아 적절한 마케팅을 펼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을수록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들은 경기를 거스르는 경향이 있다"며 "프리미엄 가전들의 주된 타겟층은 40~50대 중산층 주부와 신혼부부들"이라고 말했다.
냉장고의 사용 기간이 평균 7년인 것을 고려하면 현재 40~50대 주부들이 냉장고 교체시기를 맞이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신혼부부들의 혼수마련 트렌드가 대용량이면서도 10년 이상 쓸 수 있는 제품으로 변하면서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의 가전용품 담당 팀장도 "경기가 안 좋을 땐 이벤트 코너에 저가형 식기나 가구보다 오히려 고가의 가전제품을 배치한다"며 "특히 프리미엄 가전제품은 한 대만 팔아도 수익이 커서 고가 제품을 위주로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가전제품은 이사·혼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경기가 나빠지면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며 "또 최근 신축되는 아파트들이 '빌트인' 추세로 가면서 냉장고 등의 주방가전과 옷장 같은 가구는 판매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황에서는 최고가 또는 최저가만이 실질적 소비로 이어진다고 조언했다. 결국 지갑을 열 수요는 프리미엄 제품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는 경기가 침체될수록 명품에 집착하는 소비심리와 닮아 있다. 명품 하나로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업계 선두주자들은 이를 적절히 파고들었다. 대용량 프리미엄 제품을 통해 앞선 기술력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실질적 소비를 창출해 낸다는 얘기다. 또 중저가의 제품 라인업은 프리미엄 제품 이미지에 힘입어 대리만족 효과를 느낄 대체상품으로 주목을 끈다.
경기침체의 늪을 프리미엄 바람이 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