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현정기자] 증권업계가 개인형퇴직연금(IRP)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과도한 외형확대 경쟁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쟁이 과열된 나머지 이른바 ‘뻥계좌(잔고가 0인 계좌)’도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26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 이후 증권사들은 저마다 다양한 이벤트를 구성해 IRP 계좌 개설 붐을 이끌고 있다.
이에 따라 대형 증권사의 경우 계좌수가 1만개 이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달 31일 기준 각 업체들이 밝힌 신규 IRP 계좌 수는 미래에셋증권이 1만848개, 우리투자증권은 1만6552계좌, 한국투자증권은 1만7477계좌, 현대증권 2761계좌 등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유잔고(잔고가 0인 계좌 제외)집계는 이와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다.
금감원에 따르면 9월말 기준으로 15개 증권사의 IRP 유잔고 계좌 수는 총 8804개에 불과하다. 증권사 집계에 허수가 많다는 의미다.
유잔고 기준 계좌 수는 한국투자증권(1739개)이 가장 많았다. 이어 동양(1557개), 미래에셋(1323개), 삼성(1020개) 순이다.
현대(991개), 우리투자(788개), 하나대투(395개), 신한금융투자(290개), 대신(281개), 대우(166개), 하이투자(119개), HMC투자(118개) 등은 유잔고 계좌 수 1000개를 넘지 못했다.
교보증권의 경우 0건으로 집계됐고 NH투자증권은 1개 계좌에 그쳤다.
앞서 증권업계는 IRP를 통한 자산운용이나 투자관리 측면에 있어 펀드나 상품을 통해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 전략을 썼다.
기존 개인퇴직계좌(IRA)를 선점한 은행이나 보험사에 비해 후발주자라는 점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은행과 보험사가 사실상 독식하고 있는 은퇴시장의 판도를 바꿀 절호의 기회로 보고 고삐를 바짝 죈 것이다.
하지만 공격적인 홍보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IRP 계좌 개설과 동시에 해지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손성동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실장은 “인프라가 미비한 IRP 초기 시장에서 증권사들의 지나친 가입자 유치전은 경계해야 한다”며 “인정에 이끌리거나 이벤트에 현혹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매목적에 치중한 홍보에 자칫 가입자들의 잘못된 이해로 초기 단계인 IRP 시장을 변질시킬 가능성도 우려된다. 손 실장은 “본래 취지인 은퇴자산 ‘자물쇠’ 역할이 무력화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