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경제검찰'이라고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심을 잃은 모양새다. 동전의 양면 같이 한 편으로는 강도 높은 기업 옥죄기에 나서며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거둬들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짬짜미나 일감 몰아주기로 처벌 받은 기업을 '공정기업'으로 선정하는 등 모순된 행보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 올해 과징금 1조원 육박..기업 옥죄기?
6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올 11월까지 기업들로부터 9138억원의 과징금을 징수, 1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거둬들였다.
작년에 거둬들인 징수액 3473억원과 비교하면 두 배가 훨씬 넘는 규모다.
사실 현 정권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친기업적인 정책 기조 영향으로 공정위의 과징금 징수액은 그리 많지 않았다. 2008년 1311억원, 2009년 1108억원으로 1000억원대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집권 중반에 접어들면서 정책 기조가 '공정사회'로 바뀌자 공정위의 과징금 징수액도 크게 늘어났다. 2010년 5074억원, 2011년 3473억원, 올해 9138억원의 과징금을 징수했다.
올해 과징금 규모는 공정위가 목표로 했던 4029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는 라면값을 짬짜미한 4개 기업을 적발하고 4대강 입찰을 담합한 업체를 적발하는 등 굵직한 담합·불공정행위 사건을 여러 건 해결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뜨겁게 불고있는 경제민주화 바람도 공정위의 역할에 힘을 실어줬다. 시대적 사명이 된 경제민주화 영향으로 상생과 공정거래를 추진해야 한다는 공정위의 역할과 기대가 커졌고, 기업 옥죄기 또한 한층 더 강해진 것이다.
더구나 내년 공정위의 조사 강도는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내년도 과징금 징수 목표액을 올해 목표치보다 50% 올려잡은 6034억으로 책정하고, 조사 강도를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공정기업'에 짬짜미기업 등 선정..중심 '휘청'
공정위는 또 강도 높은 기업 옥죄기와는 달리 기업에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면죄부 혜택을 주는 등 중심을 잃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공정위가 거액의 과징금 처벌을 받은 기업이나 일감 몰아주기로 적발된 기업을 '공정기업'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공정'이 무색해지는 대목으로 경제검찰의 자질론마저 거론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포스코 등 27개 기업을 올해의 '공정거래 자율준수 우수등급 기업'으로 선정했다.
선정된 기업은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자율적으로 준수한 것으로 인정해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또 과징금을 최대 20%까지 깎아주고 공정위 직권도 최대 2년간 면제해 준다.
그러나 선정된 기업 중 담합사건이나 불공정거래, 일감 몰아주기, 시민단체 고발 등과 관련된 '부적절한' 기업이 포함돼 있어 공정성 논란과 함께 기업의 '면죄부'가 부여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선정된 기업 중 삼성물산은 4대강 살리기 사업에서 입찰 밀약이 문제가 돼 지난 6월 10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제재를 받은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공정거래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것이다.
또 포스코강판은 컬러강판 가격 담합 혐의를 받고 있는 업체며, 현대모비스는 지난 7월 하도급업체를 압박해 납품단가를 깎은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3억원을 부과 받았다.
아울러 이노션은 현대차그룹 총수 일가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데다 내부거래 비중이 48%에 달해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 케이스로 꼽히고 있는 기업이다.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평가의 투명성을 문제삼으며 "불공정 대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것까지 모자라 상까지 주느냐"고 비판했다.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은 "밀약이나 불공정거래를 한 기업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엄격한 선정기준을 적용해야만 제도의 취지가 살아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과거 2년간 법위반 사실이 있는 경우 평가 등급을 매길 때 감점하고 있으나 조사중인 기업은 법위반 여부가 확정되지 않을 경우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객관적 심사와 평가를 거쳐 선정하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