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69세 여성DJ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세상이야기

KBS 공채 4기 탤런트 출신 윤숙린씨..삼남매 키우고 라디오 DJ로 제2의 인생
"남편과 사별한 80대 할머니 사연듣고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80대 독거어르신도 돌봐.."이웃을 따뜻하게 돌보고 싶어요"

입력 : 2013-05-01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양예빈기자]서울관악노인종합복지관 한 켠에 마련된 작은 라디오 부스. 두 세 명만 들어가도 꽉차는 공간이다. 음향기기, 컴퓨터, 헤드셋 등 라디오 방송에 필요한 필수 아이템들만 갖춰져 있다.
 
윤숙린(69) DJ는 조용필의 신곡 바운스(Bounce)를 선곡했다.
 
◇윤숙린씨(69)가 라디오 방송국 '인터블루'에서 자신이 맡은 프로를 진행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 2008년 개국한 서울 관악 노인종합복지관 내 라디오 방송국 '인터블루'다. 국내 최초로 엔지니어, 프로듀서, 진행까지 노인들이 담당한다. 오디션에서 뽑힌 노인들은 복지관의 방송전문교육을 통해 아나운싱, 대본쓰는 법, 편집기기 다루기 등을 배우고 실무에 투입된다.
 
윤 할머니의 나이는 69세, 고령의 나이에도 헤드셋을 끼고 장비를 만지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꽃분홍색의 립스틱과 핑크 블러셔로 화장도 화사하다. 
 
윤 할머니에게서 DJ로서의 제2인생을 들어봤다.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지난2007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어요. 서울 관악노인종합복지관 라디오방송국 인터블루에서 DJ를 구한다는 현수막을 우연히 본 후, 오디션을 보게 됐지요
 
-원래 방송 일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저는 원래 방송에 꿈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하기도 했었고... 제가 19살 때 KBS 탤런트 공채 4기로 뽑혀서 활동을 했었거든요. 결혼과 함께 탤런트 활동을 그만뒀어요. 지금처럼 TV가 강력한 매체 파워를 가질 주도 몰랐고. 무엇보다 삼 남매를 키우고, 맏며느리로 30년간 시집살이를 하느라 가사일 외 다른 일에 도전하는 것은 생각하기도 힘들었어요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느끼는 좋은 점은 뭐가 있나요?
 
▲일단 일이 너무 재밌어요. 또 직접 선곡도 하니 옛날 노래 뿐만 아니라 20대, 30대 젊은층의 음악까지 다양하게 많이 듣게 돼요. 좋은 노래들을 고르고 이 음악을 청취자와 함께 공유하는 기쁨이 크지요.
 
-이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끊임없이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게 돼요. 매일 멘트를 직접 써야하니까 신문도 봐야하고, 책도 많이 봐야하지요. 이전 같으면 무심코 스쳐지나갔을일들도 '오늘 방송에서 말해야지'하고 유심히 보게 됩니다.
 
-어떨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시나요?
 
▲제 방송을 듣는 사람들이 기뻐하고 행복해할 때죠. 가끔 저도 제 방송을 녹음해서 들으며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구요.
 
-라디오 사연 중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남편과 사별한 80대 할머니가 사연을 보낸 적이 있어요. 남편이 저녁까지 잘 먹고 잤는데 아침에 갑자기 일어나지를 않더래요.
 
응급실에 갔을때는 벌써 숨을 거뒀다는거에요. 꿈인지, 생신지 너무 믿기지가 않는다며 남편이 생전 좋아했던 노래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신청곡으로 보낸온 적이 있어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노래에요. 사연을 읽고 노래를 틀어주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음악을 매일 선곡하는 DJ로서 요즘 한국 가요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즘 한국 가요들은 너무 가사에 내용이 없어요. 라디오 DJ 활동을 하면서 옛날 노래 , 요즘 노래를 가리지 않고 매일 듣는데, 10대 20대를 타깃으로 한 노래들이 너무 가사에 내용이 담겨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속상해요.
 
옛날 노래들은 얼마나 서정적이고 예쁜 가사가 많았어요. 음악도 어떻게 보면 다 물려주는 문화적 자산인데... 후세대들이 지금의 노래를 찾아들었을 때, 가사에 너무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아서 실망할 것같아요.
 
- 은퇴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나이들었다고 집에서 쉬고, 여행만 다니는건 지루하잖아요. 뭔가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라디오 DJ 외에도 다른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80대 이상의 독거 어르신 세 분을 꾸준히 찾아뵙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어요. 건강하지 못해서 일상 생활에 불편을 겪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여유있는 은퇴자들이 자기 배부르다고 배만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이웃들에게 좀 더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돌봤으면 좋겠어요.
 
세상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있는 윤숙린씨, 그녀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양예빈 기자
양예빈기자의 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