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의 담백한 우리 소리 담은 공연"

국립민속국악원의 소리극 <판에 박은 소리 - 빅타(Victor) 춘향>

입력 : 2013-06-15 오전 9:51:0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 대중들은 춘향전, 심청전 창극 공연과 함께 웃고 울었다. 창극 배우들은 자연스레 대중문화계의 스타로 대접받았다.
 
1937년에는 <춘향전> 음반 전집이 해외에서 녹음되기도 했다. 일본 빅타(Victor)음반사는 녹음을 위해 자국의 녹음실로 국내의 당대 최고 창극배우들을 모셨다. 녹음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 본사에서 기술자도 건너왔을 정도였다. 현대 창극계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총 2시간 2초 분량인 19장짜리 유성기음반 전집물 '정정렬 도창 창극 춘향전 빅타판'이 바로 그 역사적인 결과물이다.
 
불과 75년 전 창극이 영화를 누리던 시절의 녹음실 풍경이 무대화된다. 국립민속국악원의 소리극 <판에 박은 소리 - 빅타(Victor) 춘향>이 올해 6월부터 12월까지 매달 1회 국립국악원 연희풍류극장 풍류사랑방 무대에 오른다. 빅타 판 <춘향전>에 참여했던 당대의 명창 정정렬, 이화중선, 임방울, 박녹주, 김소희, 명고수 한성준을 국립민속국악원의 대표 소리꾼 소주호, 정승희, 김대일, 김송, 서진희, 정민영이 대신 연기한다.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지기학 국립민속국악원 지도단원이 녹음 당시 나눴던 담론을 바탕으로 대본과 연출로 재구성했다. 14일 국립국악원의 풍류사랑방에서 진행된 전막 시연회에서는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한 세련된 녹음실 무대, 완성도를 갖춘 대본, 창극배우들의 호연이 고루 돋보였다.
 
이날 공연 후 국립국악원에서 지기학 연출을 만났다. 창극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을 다루게 된 계기, 원본 판과 이번 공연에서의 소리 차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창극에 대한 오랜 고민과 애정이 저절로 느껴졌다.
 
다음은 지기학 연출가와의 일문일답.
 
-이번 공연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꽤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작품이다. 서울에 있다가 남원국립민속국악원으로 내려간 지 17년 정도 됐다. 춘향전 창극을 만들 기회가 주어지면서 작품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창극 역사를 뒤지며 영상이나 녹음 자료를 찾다가 빅타판 <춘향전> 음반을 만나게 됐다.
 
음반을 들어보니 기존 우리가 아는 창극 춘향전 장면 외에 다른 장면들도 들어 있었다. 소리도 달랐다. 지금은 기교가 많아져 소리에서 가사 전달이 뚜렷하지 않을 수 있는데 예전에는 훨씬 기교도 적고 담백하게 불렀더라. 어떻게 보면 문학 전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젠가 이것을 토대로 창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올해 국립국악원에 풍류사랑방 극장이 생겼다. 평소에 공연을 만들 때 마이크 안 쓰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곳이 그런 조건이 된다. 국립국악원에서 이 공간 환경에 맞춘 기획을 고민하고 있었느데 내가 이 작품을 제안했다.
 
-녹음할 당시의 시대에 대한 고증은 어느 정도까지 마쳤나.
 
▲몇 가지 에피소드는 그동안 스승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토대로 만들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이 박녹주 선생님에 대해 사모의 감정을 품었다는 에피소드 같은 경우가 그렇다.
 
중간 중간에 명창들이 판소리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사실 내 이야기다. 내가 창극을 바라보는 시각을 담았다. 요즘은 소리가 전통이라는 틀거리에 상당히 매여 있지 않나. 그런데 소리에 깊이 들어갈수록,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 당시에는 굉장히 자유로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이전 시대의 명창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도 않았을 거다. 굉장히 자유로운 입장에서 관객과의 소통을 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만들었다. 내가 요즘 소리세계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그분들은 아마 이랬을 거다'라고 생각하며 푼 부분이 있다.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으로부터 고증받은 부분도 있다. 일본에 녹음하러 갔을 당시 대접을 잘 받았던 얘기가 그렇다. 김소희 선생님의 경우 살아계실 때 프라이드 가지고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 자신의 <춘향전> 개인음반을 낼 때도 표지사진으로 빅터 춘향전의 기념사진을 내걸 정도로 프라이드가 대단했다고 한다. 그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이번 공연 의상도 제작했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나.
 
▲이즈음의 소리는 예전의 것과 굉장히 다르다. 출연한 창극 배우들이 사실은 춘향전 창극을 굉장히 여러 버전으로 해본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그들 머릿 속에 이미 입력된 춘향전의 버전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이 빅터판 음반은 발성법도 다르고, 시김새 같은 꾸밈음도 많지 않다. 꾸밈을 생략하고 그 음반의 소리를 따라 가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작품 중 허구와 사실을 구분해본다면.
 
▲장구, 꽹가리, 북 소리 같은 경우 실제로 녹음본에도 있다. 타악, 기타, 피리 등으로 구성된 배경음악은 이번에 우리가 따로 만든 부분이다.
 
박녹주 선생님이 경상도 성산 분이다. 그래서 박녹주 선생님의 음반을 들어보면 아니리에서 경상도 말씨를 실제로 쓰신다. '향단이' 발음이 잘 안되는 부분도 있다(웃음). 재미있게 느껴져서 그런 특이한 말투를 공연에 가져왔다.
 
여자 창극 배우들 간 질투하는 대목은 창작한 부분이다. 요즘 국악 전문 공연단체에서 활동하다보면 여자 소리꾼들끼리의 약간의 시기나 질투가 있다. 영화 속 여배우들처럼 똑같다(웃음). 나이가 32세 정도인 젊은 시절이었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실제로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고 하더라.
 
-극이 소리 위주로 간다. 기승전결이 있으면 일반 관객이 더 보기 편할 수도 있는데.
 
▲<춘향전>의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한편 사이사이에 녹음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는데 두 가지를 잡는 게 어렵더라. 사실 창극 배우들이 연극 배우들은 아니어서 섬세한 감정까지 표현하기는 힘든 면이 있다. 연극의 희곡 텍스트 형식과 판소리만의 서사성은 전혀 다른 것이니까. 그런데 에피소드를 연기하는 대목에서 사실적인 연기가 어느 정도 필요해 배우들이 애를 먹었다.
  
-원본과 이번 공연을 비교할 때 어느 정도나 닮아 있나.
 
▲처음에는 철저하게 원본의 모사로 시작했다. 그 다음 극의 분위기와 길이에 맞게 잘라낸 부분들이 있다. 또 연결하는 부분, 합창하는 부분 등은 연출의도에 따라 내가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모사를 하되, 그 다음에 우리만의 것으로 소화하자는 식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배역이름도 그냥 '김소희'가 아니라 '2013 김소희'다.
 
-극장에서 소리가 다소 울리더라.
  
▲올해 4월에 개관한 극장인데 현재 잔향이 길게 남아서 다음 대사가 물린다든지 하면 소리가 뭉그러진다. 국악원 쪽에서 음향적인 부분을 계속 보완해 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창극을 하면서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창극을 10년 정도 하면서 보니 우리가 아는 서양의 기승전결 있는 플롯과 판소리의 플롯이 전혀 다르다. 그런 면에서 나도 처음에는 헷갈려 했다. 우리 소리에 서구식 플롯구조를 가져오면 중간에 비약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반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는 관객들은 익숙하지 않겠지만 사실은 우리 소리의 문학구조는 서양의 것과 다른 측면이 있다.
 
사실 창극에 요즘의 연극만들기 방식들이 영향을 주고 있다. 그동안 연극하는 연출가 분들이 창극을 만들어오셨는데 철저하게 창극만의 독자성을 찾기보다는 당신이 가진 연극방법론을 우리 소리와 믹스해 실험해보는 정도의 작업들이었다. 창극만 쭉 연구해온 분들이 별로 없어서 창극이 계속 실험에 그치는 점이 아쉽다. 창극배우의 연기, 연극배우의 연기가 어떻게 달라야 하느냐 역시 요새 고민하는 부분이다.
 
어쨌든 나로서는 극장에 맞게 어떻게 우리 것을 해체해서 특정 양식으로 재미있게 담아낼까를 고민하고 있다. 창극만의 특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나가야 할 것 같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김나볏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