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지난 2011년 기록적인 폭우로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로 인근 건설현장에 공사차질이 빚어졌음에도, 발주처인 SH공사로부터 공기를 맞추라는 요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사현장 책임자의 죽음을 법원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서울고법 행정합의7부(재판장 민중기)는 유족 임모씨(52·여)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우면산 산사태로 공사현장이 토사 등에 덮이는 등 천재지변으로 공사현장에서 피해복구작업이 병행됐다"며 "시공사를 독려해 공기를 준수해야 하는 고인으로서는 이례적인 자연재해로 인한 과중한 업무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SH공사의 책임으로 공사착공이 지연돼 공기가 연장됐고, 공사는 준공기간 내에 완료돼야 했다"며 "천재지변은 적법한 공기연장 사유에 해당함에도 이 같은 이유로 공기가 연장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인은 SH공사와의 종무식 겸 점심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와 자살에 이르렀다"며 "사망 무렵의 고인의 태도와 자살한 시간과 장소 등에 비춰 자살 원인이 업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모씨는 SH공사가 2008년 발주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일대에 1477세대 규모의 아파트 공사의 책임감리용역을 맡은 K엔지니어링의 전무이사로서 현장 책임감리단장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2011년 6~7월에는 전국에 잦은 호우가 쏟아졌고, 공사는 중단되기 일쑤였다. 특히 같은해 7월27일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우면산 일대에 산사태가 발생해 공사현장이 토사에 덮혀 공사진행에 차질이 빚어졌다.
정씨는 공기 안에 공사를 마무리지어야 하는 압박에 더해 SH공사가 준공을 앞두고 설계변경을 요청하고, 감리원이 감축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자 2011년 12월29일 공사현장 사무실에서 자살했다.
유서에는 '발주처의 고압적인 압박, 두고 보자는 식의 협박, 감리원을 보내야 하는 동료로서의 아픔' 등 그간의 심정이 담겼다.
유족들은 "SH공사가 무리하게 공기를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등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고인이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며 원고패소 판결했고, 유족들은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