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전경(사진=한승수)
[뉴스토마토 한승수기자] 지난 19일 열린 서울시 국정감사에서는 구룡마을 개발을 두고 늦은 시간까지 여·야 의원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정작 구룡마을 주민들은 이런 공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구룡마을에서 본 적도 없는 의원들이 구룡마을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국감에서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구룡마을은 1991년 청와대까지 연루된 초대형 부동산스캐들인 수서택지비리사건의 축소판이라 단정짓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집중 공격했다.
반면 야당 의원들은 "2500여명의 주민들을 100% 재정착시킬 수 있는 방식이며, 아무리 많은 땅을 가지고 있어도 660㎡내에서 보상이 돼 있기 때문에 특혜는 없다"고 박 시장을 감쌌다.
여당 의원들의 집중 추궁을 받던 박 시장은 결국 "이 자리에서 (질문을) 다 받을 순 없다. 감사원 감사를 받겠다"는 말로 상황을 마무리 하려 했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말부터 도심의 개발에 밀려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이다. 현재 1242가구에 약 2530명이 거주하고 있다. 화재 등 재해에 노출돼 있고, 오폐수, 쓰레기 등 생활환경이 매우 열악한 지역으로 서울에 남아있는 최대의 집단 무허가촌이다.
◇“여당의원들 구룡마을이 어떤 곳인지 직접 와서 본적있나”
"구룡마을을 제2의 수서비리라고 말한 이노근, 이장우 의원이 어디 의원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구룡마을에 한번이라도 와서 본적이 있나. 여기 사정이 어떤지 알고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여당 의원들의 수서비리사건 축소판이란 발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수서택지특혜분양사건은 1989년 3월 수서, 대치 일원 택지개발 예정지구를 한보건설과 특정조합에 특혜공급을 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분양과정에서 한보그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 관계자, 국회 건설 위원회 소속 의원, 건설부 공무원 등에게 뇌물을 건네준 정·경·관이 유착한 대형 스캔들이다.
당초 이 택지는 무주택서민들에게 분양할 목적이었지만 외압에 의해 조합에 특혜분양됐다. 당시 조합에는 서울지방국세청, 군, 경제기획원 등 공공기관이 다수 참여했다.
여당 의원들은 구룡마을에 대해 수용 방식의 공영개발에서 환지혼용방식으로 갑자기 선회된 점과 인허가권자인 강남구청 협의와 주민공람 절차를 생략한 채 사업을 진행한 점을 들어 비리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구룡마을 한 주민은 "수서택지가 공무원들만의 특혜 축제였다면 구룡마을은 여기에 살고 있는 2500여명의 판잣집 거주민들의 거주개선을 위한 사업"이라며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내년 1월 이주 예정이었지만 감사원 조사까지 들어가면 쓰러져가는 판잣집에 얼마나 더 머물러야 할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서울시 역시 이에 대해 "100% 거주민 재정착과 시 재정, 주민들의 요구를 이유로 공영개발 중 환지혼용방식을 택한 것이며, 강남구청장에게도 사전에 통보를 했고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구청장, 서울시장 안 만나준단 말 전에 주민부터 만나라”
시가 강남구청과의 사전협의없이 개발 방식을 바꿔다는 여당 의원들의 설명에 대해서도 구룡마을 주민들은 신 구청장이 위증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관계자는 "맹정주 전 강남구청장이 추진하던 구룡마을 민영개발 사업이 공공개발로 바뀌는 과정에서 주민공람을 실시했다"며 "당시 주민 1160여명의 요구로 환지혼용방식으로 수정 보완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제12차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주민요청에 따라 일부 환지혼용방식 조건부로 구룡마을 도시개발구역 지정안을 가결했다는 것이다.
도계위 조건부 가결 후 한달 뒤 강남구청은 환지수용방식을 수용하는 보도자료를 냈고, 구청장 주도에 의해 전문가와 주민대표로 구성된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 정책협의체'도 구성됐다.
협의체 주민대표인 김원0씨와 이강0씨, 김길0씨 등 3인은 강남 구청장이 지정한 요건에 따라 직접 선출됐지만, 정작 신 구청장의 불참으로 협의체는 정상적으로 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신 구청장과 구룡마을 개발 방식에 대한 논의를 원하고 있지만 성사되지 않고 있다.
유귀범 구룡마을 주민자치회장은 "국회의원과 구의원들을 통해 계속해서 신 구청장과 만남을 시도했지만 단 한번도 응해준 적이 없다"며 "시장이 (신 구청장의 면담요청)을 피한다는 얘기 전에 우리 주민들의 말부터 들을 자세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 범시민사회단체연합은 지난 16일 직무유기와 허위사실 유포를 이유로 신 구청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강남구청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에 구룡마을에서는 신 구청장의 정치적 포석이란 소문만 확대되고 있다.
한 주민은 "신 구청장은 MB시절 강남구청장에 오른 사람이고, 일산이 근거지인 사람으로 내년 지방선거에 공천이 어렵지 않나 싶다"면서 "때문에 박원순 저격수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다시 한번 선거에 나오려는 속셈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