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의 시국미사에서 박창신 원로신부의 발언에 대한 여권의 파상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25일 대통령과 총리의 경고성 발언에 이어, 새누리당은 정의구현 사제단을 '종북'으로 규정짓고, 민주당에까지 공세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실세로 평가받는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26일 정의구현사제단을 '북한 세습정권',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혁명조직이라고 검찰에 기소된) 'RO'와 동일선상에 놓았다. 윤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들은 똑같은 주장을, 똑같은 목표를 갖고, 똑같은 행동을 한다"고 했다.
또 "신앙 뒤에 숨어 친북, 반미 이념을 갖고, 종교 제대 뒤에 숨어 반정부, 반체제 활동을 벌인다"고도 했다. 그동안의 '종북'에서 공세가 한층 강해진 것이다.
새누리당의 이같은 파상공세는 종교단체에 가하는 공세치고 상당히 이례적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MB 퇴진'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선언적 수준에 그쳤다. 한나라당 몇몇 의원들이 불만을 표했지만 이것 역시 개인적 차원에 그쳤다. 지금의 전방위적 공세와는 사뭇 다르다.
결국 여권의 공세는 다분히 상황 돌파용 의도가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국정감사를 통해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의혹은 군까지 포함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으로 확대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국정원의 트윗글 121만개가 검찰의 수사로 추가 발견됐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며 전방위적으로 공세를 펴는 시기다.
종교계에서도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이전에 기독교계와 불교계에서도 시국선언을 준비했다. 정권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확대되는 시점이었다. 여권은 바로 이 시점을 공략했다는 평가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 대한 정권 차원의 총공세가 계속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2일 정의구현 전구교구 사제단의 시국미사 모습. ⓒNews1
정치권이 특검·특위의 수용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하는 것과 달리 시민사회는 박 대통령의 '사퇴(혹은 하야)'를 이미 오래전부터 직접적으로 거론해왔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이전에도 시민사회가 주축이 돼 십여 차례 열린 '국정원 사건 시국회의' 촛불집회에서도 '박근혜 사퇴'라는 구호는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번에 달랐던 것은 논란의 소지가 상당했던 '연평도 발언'이었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던 사람들까지 그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부적절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박창신 원로신부의 두 발언을 묶어 공세에 나섰다. '연평도 포격 발언'을 '종북'이라는 근거라고 주장하며, "북한의 대남투쟁 지령이 하달된 이후 대선 불복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우리는 예의주시하면서 경계할 필요까지 있다(황우여 대표)"는 식으로 대통령에 대한 사퇴 요구에도 '종북'을 덧씌웠다.
당장 새누리당의 공세가 정략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유는 새누리당의 태도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당초 새누리당은 박 신부의 발언을 '한 종북 신부의 발언' 혹은 '정의구현 사제단 중 일부의 발언' 정도로 치부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는 당연히 천주교 전체 의견일리도 만무하지만 정의구현사제단 전체 입장과도 판이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같은 회의에서 심재철 최고위원도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일부 사제들"이라고 한정지어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25일 경고성 발언이 나온 후인 26일 새누리당은 앞서 전한 윤 원내수석부대표의 말처럼 '정의구현사제단' 전체를 종북집단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의 발언 직후, 검찰은 박 신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하며, 정권 차원의 대대적 공세를 예고한 상태다.
그러나 박 신부와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이런 공세가 무리라는 지적이다. 우선 정의구현사제단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 내내 민주화 운동에 노력해 왔고, 민주화 이후에도 전쟁에 반대하는 뜻을 지속적으로 내비쳐왔다. 심지어 참여정부 당시에는 정부의 이라크파병을 비판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기도 했다.
또 박 신부의 발언이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국가보안법' 처벌이나 '종북'으로 낙인찍기를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이같은 종북공세에 물타기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김한길 대표는 26일 박창신 원로신부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일부 사제에게 허물을 씌우는 것으로 결코 지난 대선에 불법 개입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와 여권의 공세를 "매우 불순하다"고 맹비난했다.
초선의원 34인도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종북'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매카시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터져 나오는 국민적 저항을 입막음하기 우해 종북의 덫을 씌우고 잘못을 지적하는 사제단에게 공안몰이를 하는 적반하장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