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삼성그룹이 2014년 연말 정기 사장단 인사를 통해 이건희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총 8명의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당초 예상과 달리 부회장 승진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정연주 삼성물산 부회장은 부회장단 중에 유일하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실적 부진의 책임을 물은 것으로, 사실상의 경질이라는 평가다.
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서 삼성그룹 측이 밝힌 '삼성전자의 성공 DNA를 침체에 빠진 전 계열사로 확장시키는 것', 그리고 '실적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신상필벌'로 꼽힌다. 여기에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성격이 짙다는 게 그룹 안팎의 공통된 기류다.
특히 삼성그룹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 출신 부사장이 전체 사장 승진자의 약 62%를 차지하는 등 핵심 세력으로 부상한 반면 삼성생명, 삼성생명 등은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대표이사가 전격 교체됐다.
◇이서현 부사장 등 8명 사장 승진..‘전자 출신이 승진자 62%’
삼성그룹은 2일 2014년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8명의 사장 승진과 8명 이동 및 위촉 등 총 16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우선 가장 주목을 끌었던 이건희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부사장이 예상대로 3년 만에 삼성에버랜드 사장으로 승진하게 됐다.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사진=삼성)
녹록치 않은 경영환경 속에서도 글로벌 패션 전문가로서 패스트 패션, 아웃도어 사업 진출 등의 공을 세웠다는 게 삼성그룹의 평가다. 이 사장은 패션사업이 삼성에버랜드로 통합 이관된 패션부문 경영기획 담당 사장을 맡게 돼 전공을 이어간다.
특히 그의 이동으로 삼성에버랜드는 이부진, 이서현 체제를 갖추게 됐다. 사실상의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에버랜드에 자매를 배치함으로써 협업과 견제, 긴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점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위치하게 된다.
원기찬 삼성전자(005930) 부사장은 삼성카드 대표이사로 승진하게 된다. 원 신임 사장은 삼성전자 북미총괄 인사팀장, 디지털미디어총괄 인사팀장 등을 역임한 그룹 최고의 인사 전문가로 불린다.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해 삼성카드의 부흥기를 노리게 된다.
조남성 삼성전자 부사장은 패션사업을 뗀 제일모직의 새로운 수장에 올라 제일모직을 부품, 소재전문회사로 도약시킨다. 조 신임 사장은 삼성전자 일본본사 반도체, LCD사업부장, LED사업부장 등 반도체를 두루 경험한 전문가다. 제일모직은 조 신임 사장을 맞아 향후 세계 최대의 부품소재 전문 기업으로 재탄생하는 동시에 삼성전자 순수 계열사로 편입하게 된다.
이외에도 김영기 삼성전자 부사장은 네트워크사업부장(사장), 이선종 삼성전자 부사장은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정연주·박근희 부회장 사실상 경질..강력한 '신상필벌'
삼성그룹 내에서 삼성전자와 함께 핵심 계열사로 분류되는 삼성생명(032830)과 삼성물산(000830)의 경우, 대표이사가 모두 교체되는 등 인사폭이 컸다. 무엇보다 실적 부진에 따른 책임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다.
◇최치훈 삼성카드 사장.(사진=삼성)
우선 삼성물산의 대표이사 겸 건설부문장에 오르는 최치훈
삼성카드(029780) 사장은 CE에너지 아태지역 사장 출신으로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카드를 거친 'B2B 전문가'로 꼽힌다.
삼성생명 대표이사를 맡게 될 김창수 사장의 경우 삼성화재 사장을 맡아 은퇴시장, 해외시장 등 신사업 부문에서 기록한 성과가 인사에 크게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외에도 불산사태로 곤혹을 치른 전동수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은 삼성SDS 대표이사로,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기존에 전동수 사장이 맡았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을 맡게 될 예정이다.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은 김봉영 삼성에버랜드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투톱'을 구성해 삼성에버랜드를 진두지휘하게 된다. 윤주화 사장은 패션부문을, 김봉영 사장은 리조트·건설부문을 맡으며 에버랜드의 ‘제2 도약’을 노린다는 방침이다. 이는 곧 향후 진행될 후계구도의 밑그림으로 풀이된다.
한편 올해 인사의 경우 지난해와 달리 부회장 승진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당초 삼성전자 투톱으로 불리는 윤부근, 신종균 사장의 동시 승진이 유력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오히려 정연주 부회장의 경질로 기존 6명의 부회장단이 5명으로 줄었고, 박근희 부회장은 삼성사회공헌위원회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와 관련해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삼성전자 이외에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록한 계열사가 없었다”며 “삼성전자 성공 경험을 계열사로 전파하면서 사업 재편과 신성장 동력 확보 등 혁신을 선도할 인물을 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그룹의 인사는 이번에도 냉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