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보선·서유미기자] 여의도 증권가에서 주식워런트증권(ELW)은 화려한 한때를 자랑하다 과도한 규제 때문에 죽어버린 시장으로 통한다. 세계 4위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던 일평균 거래규모가 당국의 '시장건전화' 정책이 나온 뒤 10분의 1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ELW는 주식이나 주가지수를 미리 정한 가격으로 예정된 시점에 매매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증권이다. 지난 2005년 12월 개설 이후 거래대금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질적인 성장은 더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 2010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시장 건전화 방안이 발표됐다. 무분별한 투자를 억제하고 특혜를 줄이는 규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특히 LP의 호가 제출을 유동성공급 목적으로 제한하면서 거래대금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ELW시장 규제는 과도한 투기성을 제한한 것일까, 아니면 원동력을 잘라내버린 것일까? '스캘퍼' 재판에서 대법원의 '무죄' 확정이 잇따르면서 ELW시장를 되돌아보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손발 꽁꽁 묶인 ELW시장, 규제완화는 '느릿느릿'
ELW시장은 개설된지 10개월만에 세계 수위권으로 급성장했다. 지난 2006년 일평균 거래대금이 약 3000억원을 넘으며 독일과 홍콩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소위 '스캘퍼(초단타매매자)' 논란에 휩싸이면서 시장은 규제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전용회선을 사용하는 스캘퍼가 차별화된 정보를 이용하며 부당한 특혜를 받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정부는 2010년에서 2012년 사이 세차례에 걸쳐 ELW 시장 건전화 방안을 발표했다. 개인투자자의 무분별한 투자를 억제하기 위해 기본예탁금 1500만원을 부과하고, 스캘퍼에 대한 부당한 특혜를 줄이기 위해 '전용회선'을 제한했다. ELW 상장 발행횟수를 제한하고 심사도 강화했다.
이와 함께 LP에 대한 규제도 나왔다. LP는 과도하게 호가제출을 하면서 스캘퍼의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반적으로 LP는 호가제출의무와 관계없이 상시적으로 호가를 제출해 왔다.
금융위는 지난 2012년 LP가 시장 스프레드(매수·매도 호가 간격) 비율이 15%를 초과하는 경우에만 8~15% 수준에서 호가를 제출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호가의 빈도가 줄어들면서 거래대금도 자연스럽게 급감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까지 1조원대를 훌쩍 넘던 일평균 거래대금은 건전화정책 이후 평균 1000억~2000억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자료제공=우리투자증권, 한국거래소)
ELW시장을 관리하는 한국거래소는 ELW 제도 개선 카드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단순히 규제 완화가 아닌 규제 체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며 “호가 시스템 변경과 더불어 비표준화된 상품 구조를 표준화 하는 등 시장과 상품 구조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당국 차원의 본격적인 검토가 이뤄지는 단계는 아니다.
금융위 자본시장국 관계자는 "ELW시장 규제 완화에 대해서 아직 고려하고 있는 바는 없다"고 말했다.
◇업계 "제기능 상실한 ELW 시장, 호가제한 규제 풀어야"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투자업계는 ELW시장 침체에 익숙해져버린 모습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기존에 ELW를 커버리지했지만, 수요가 줄어들어 손을 뗐고 주위에서도 투자하는 것을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LP 호가제한으로 개인투자자들이 떠나는 등 시장의 순기능이 퇴색한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ELW는 호가를 타이트하게 붙여야 시장에서 순기능을 한다"며 "호가 스프레드를 의무적으로 제한해 거래가 안되자 투자자들이 떠난 게 시장 위축의 주 원인"이라고 말했다.
기본예탁금 제도 역시 '개미'들이 ELW시장을 등지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ELW를 매매하기 위해서는 기본예탁금이 15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ELW는 소액으로 투자, 헤지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며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식은 1주당 가격이 비싸 이를 잘게 쪼개어 삼성전자를 소액으로도 매매, 헤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ELW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규제"라고 지적했다.
업계는 ELW시장이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제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시장 자체가 과거보다 과도하게 축소됐다는 점에서 시장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헤지, 위험관리, 다양한 투자 방법 제공 등 시장이 가진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느 정도의 유동성은 뒷받침돼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ELW 규제를 단순히 풀어주는 것 이상으로 규제 체계 개선을 위한 업계와 당국간 소통이 긴요한 이유다.
금투협 관계자는 "스캘퍼로 인해 개인투자자의 거래가 어려워지는 것도 문제인 만큼 규제의 범위가 적정 수준을 찾는 게 시급하다"며 "당국이 우려하는 것처럼 큰 관점에서는 개인투자자의 손실을 막으면서도 거래량을 살릴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원배 현대증권 연구원도 "투자자들이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려면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ELW 거래에 대한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LW 특혜의혹 사건 무죄판결 잇따라..규제완화 기대감
이런 와중에 업계에서 반길만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스캘퍼 특혜 제공' 의혹으로 기소된 12개 증권사 대표와 IT 담당자들에게 '무죄' 확정 판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면서 규제 완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보이고 있다.
◇ELW 부당거래 '무죄' 확정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12개 증권사의 관련 재판 중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사건은 2건이다. (자료=뉴스토마토DB)
검찰은 2011년 12개 증권사 임원들이 ELW 상품을 판매하며 스캘퍼에게 속도가 빠른 전용회선을 쓰도록 특혜를 제공하는 등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이들을 기소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재판 결과에 대해 "검찰 기소 때부터 과도한 시장 규제라고 봤다"며 "금융당국에서도 ELW시장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하나의 명분이 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