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방글아기자] 파업중인 노동조합을 상대로 기업측이 청구하는 손해배상 등이 과도해 노조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7일에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법적지위를 인정하라는 권고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한국 정부에 이례적으로 '깊은 유감'까지 표명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이렇다할 입장이나 방안 등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9일 노사상생을 위한 것이라며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내논 게 전부다.
오히려 시민사회가 나서 노조 손배소와 가압류 등으로 피해 본 노동자들의 구제에 나섰다.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잡고)'와 아름다운재단이 지난 2월부터 시작한 모금활동에는 현재 3차까지 2만1488명이 참여해 11억5458만5760원이 모였다.
◇손배소·가압류 피해노동자들을 위한 모금 프로젝트 '노란봉투'.(사진=아름다운재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27일 철도공사에 노조탄압 중단과 대화를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파업중인 노조에 철도공사가 162억원 손해배상, 노동조합계좌 116억원 가압류를 청구한 것은 보복성이 짓다는 판단에서다.
국제적인 기준에서도 한국은 노조 설립 및 활동 등에 대한 제한 수위가 높은 편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 노조조직률은 '11년 기준 9.9%로 꼴찌 수준이다.
ILO는 지난 13일부터 27일까지 연 이사회를 토대로 낸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에 전공노와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즉각 인정하라고 촉구하고, 손배소 등의 근거가 돼 노조의 파업권을 침해하는 '업무방해죄'와 관련해서도 조치를 취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경제발전노사정위원회 관계자는 "ILO가 내 놓은 의견에 대해 의제화할 계획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말했고, 고용부 국제협력담당과는 "스위스 제네바 현지에 있는 직원들을 통해 소식을 전달 받고 있는데, 예상 밖의 큰 사항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공식적인 대응은 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2003년 손배소와 가압류에 항거해 목숨을 끊은 배달호씨 등의 사례를 계기로 관련 법안을 개정했다. 노동자의 최저생계비를 보장하고 기업측의 제도 남용을 방지하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2012년, 최강서 씨가 같은 이유로 목숨을 끊었다. 사측은 노조를 상대로 158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중 74억4000여만원의 손해를 인정, 80%인 59억5900여만원을 노조에 물렸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을 두고 보다 명확한 법규정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행법은 합법파업의 기준을 모호하게 설정하고 있어서 법원의 재량에 따른 해석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문현웅 변호사는 "손해배상은 위법성이 전제 돼야 하는데 이때 업무방해죄가 노조를 상대로 한 사측의 손해배상 소송의 근거가 된다"며 "ILO의 요청은 헌법으로 보장 받는 노동3권의 행사가 형사상의 업무방해죄로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을 막으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실적으로 합법파업은 '단체협약의 대상이 되는 것'을 문제 삼아 쟁의할 때 가능한데 사실상 민영화 등처럼 단체 협약 대상 조건이 안될지라도 근로조건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합법화하지 않으면 근로조건이 저하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