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40년째 별이 쏟아지는 곳, 소백산천문대를 찾아서

입력 : 2014-03-30 오후 12:50:55
[소백산천문대(충북 단양)=뉴스토마토 곽보연기자] 'KMT 184.05'
 
최근 한반도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관심이 집중됐던 별이 있었다.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의 주인공 도민준(김수현)이 온 별 'KMT 184.05'이 그 주인공이다.
 
KMT 184.05은 안타깝게도 가상의 별이지만, 이름은 그럴싸하다. KMT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망원경 'Korea Microlensing Telescope'의 약자로, 천문학에서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을 때 관측에 사용된 망원경의 이름과 이 망원경으로 발견한 별의 순서를 이름으로 붙인다. 즉 도민준이 온 별은 우리 망원경 KMT가 184.05번째 발견한 행성인 셈이다.
 
'별그대'로 천문학이 국민적 관심사로 급부상하면서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소백산 천문대를 지난 28일 찾았다. 우리나라 현대 천문학의 근원이 된 소백산 천문대는 지난 1973년 설립됐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소백산 천문대의 정식 건립일을 1978년으로 기억한다.
 
소백산 천문대를 진두지휘하는 성언찬 대장은 "망원경이 첫번째 별을 봤을 때 '망원경이 살아났다'고 말하는데, 우리가 처음으로 별을 본 것이 1978년이었다"며 "이때 우리는 소백산 천문대가 생겨났다고 정식으로 말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백산 연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천문대 설경.(사진제공=한국천문연구원)
 
◇안개가 적고 바람이 없는 곳..별 보기 가장 좋은 '소백산'
 
국내 첫 관측천문대 건축지로 '소백산'이 선택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1970년 당시 천문학자들은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며 천문대를 짓기 최적의 장소를 찾아다녔고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는 장소로 소백산을 선택했다고 한다.
 
우선 안개가 자주 낄 수록 관측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날씨가 맑고 하늘이 맑은 곳을 골라야 했다. 바람이 자주 불면 망원경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은 적어야 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 가능성이 적은 곳이어야만 했다. 관측에서 가장 방해꾼이 되는 것이 '빛'이다. 근방에 도시가 있다던지 밤새 불을 켜놓는 상업지구가 있다면 관측이 힘들진다는 설명이다. 당시 소백산은 그런 위험이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40여년 세월이 흐르면서 소백산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충주호가 생기면서 안개가 발생하는 날이 많아졌고, 과거 160여일에 달했던 관측가능일수는 현재 120여일로 줄었다. 소백산자락 아래 풍기와 영주에 온천리조트가 들어서면서 관측에 방해가 되는 빛이 많아지기도 했다.
 
기자가 천문대를 방문한 28일에도 밤 11시를 넘겨도 별들이 모습을 드러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서구 한국천문연구원 팀장은 "높은 별은 온통 구름에 가렸고, 눈에 들어오는 건 아랫 별(도심의 빛)뿐이네요"라며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소백산천문대에서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아직도 눈이 무릎 높이까지 덮여있었다. 철쭉 꽃 몽우리가 움틀만큼 날씨는 봄에 가까워졌지만 일교차가 커 겨울과 공존하는 곳이었다.(사진=곽보연기자)
 
소백산 천문대는 연구를 목적으로 건립된 곳이기 때문에 일반인의 견학은 불가능하다. 다만 천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연구 연수,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과 교사, 연구원들의 연구지원 등 천문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추가된 것이 '문화예술 지원사업'이다.
 
성 대장은 "과학도 '문화'라는 생각에 소백산 천문대에서도 최근 과학을 컨셉으로 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며 "SF 작가나 드라마 PD, 만화가, 영화감독 등 예술가들을 초청해 작가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별그대'와 같은 드라마, 소설, 영화, 만화가 더 많이 나와 천문학에 대한 국민들의 친밀감을 높여주길 바란다"며 "드라마 별그대나 유성에 대한 관심, 최근 발견된 운석 등 우주와 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천문대를 찾고자 하는 문의전화가 빗발치지만 안타깝게도 단순 관광이나 캠핑을 목적으로는 천문대를 방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소백산 천문대 연구동 2층에는 1978년부터 기록된 관측일지가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성언창 대장은 이 일지들을 '천문대의 보물'이라고 소개했다.(사진=곽보연기자)
 
◇국내 천문학계의 새로운 도전..'거대마젤란망원경(GMT)'
 
"관측 연구는 전쟁과 같습니다. 전쟁에 미사일과 소총, 대포, 군인 등이 필요한 것처럼 관측 연구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망원경과 우수한 연구인력이 필요합니다."
 
소백산 천문대와 역사를 함께한 61cm반사망원경은 올해로 40세를 맞이했다. 망원경의 평균 수명이 50세인점을 감안하면 이미 '할아버지' 망원경인 셈이다. 이 망원경은 1973년 모두 3대가 제작됐는데, 현재까지 돌아가는 것으로는 소백산에 위치한 망원경이 유일하다.
 
이렇게 오랜 기간 망원경을 이용할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해졌다. 부지런한 연구원들 덕분에 유지·관리가 잘 된 것이냐고 물었는데 성언찬 대장은 대답은 뜻밖이었다. "대체 장비가 없다보니 계속 쓸 수밖에 없는 겁니다". 조금은 슬픈 대답이다.
 
◇소백산천문대와 역사를 함께한 61cm반사망원경.(사진=곽보연기자)
 
학자들은 계속해서 새 장비를 요구하고 있지만, 관측일수가 120여일에 불과한 우리나라에 더 큰 망원경을 짓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때문에 국내 연구진은 10%의 지분을 투자해 미국, 호주와 함께 칠레에 거대 망원경을 건설하고 있다. 칠레는 연간 관측일수가 330일에 이르는 최적의 관측지다.
 
'거대마젤란망원경(GMT)'으로 이름이 붙여진 이 망원경은 직경이 25.4m에 이르는 반사망원경으로 제작에만 1조원이 투입되고 이를 운영하는데 하루에 드는 비용이 3억~4억원이 든다. 오는 2019년 칠레 안데스 산맥 라스 캄파나스 천문대에 들어설 예정이다.
 
거대마젤란망원경 사업총괄을 담당하고 있는 박병곤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천문우주과학과 겸임교수는 "천문학자들에게 있어 망원경이란 눈과 같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며 "GMT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 망원경보다 훨씬 큰 망원경으로 인류가 한번도 보지 못했던 우주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부푼 기대를 나타냈다.
 
한편 이날 온종일 하늘을 가리고 있던 구름은 밤 11시30분께부터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밝은 별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정이 됐을 무렵엔 목성과 화성, 별자리들이 제 모습을 온전히 보여줬다.
 
천문대 앞마당에 부랴부랴 150mm 쌍안경과 150mm 굴절망원경(Takahashi 150mm)을 펴고 목성을 찾았다. 붉은 별이 망원경 렌즈를 통해 눈으로 들어왔다. 띠와 4개의 층으로 분리된 색이 분명하게 보였다. 토성은 지평선 너머에서 올라오고 있어 볼 수 없었지만, 처녀자리의 '스피카'와 그 옆에서 함께 밝게 빛나던 화성도 망원경을 통해 찾을 수 있었다.
 
멀리서 본 별들은 아름다웠다. 까만 밤 하늘은 수놓은 은하수와 알 수 없는 행성들, 그림으로만 봤던 별자리. 낮밤이 바뀐 채로 12시간 365일 끊임없이 새로운 별을 관측하면서 우주의 근원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 새삼 존경스러우면서도 부러운 밤이었다.
 
◇별들의 일주운동을 카메라로 담은 모습.(사진제공=한국천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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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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