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조세정책)①습관화된 세금 뒤집기

입력 : 2014-04-02 오전 12:46:25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복지지출이 확대되면서 국가재정의 근간이 되는 조세정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심을 잡고 국민들을 이끌어 가야할 정부의 정책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정도로 빨리 뒤집히고 있는 실정이다. 관심이 높은 만큼 정책수립 과정도 꼼꼼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뉴스토마토는 현재의 상황을 조세정책의 위기로 평가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분석,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대한민국 조세정책에 위기가 찾아왔다.
 
◇글싣는 순서
책임있는 정부당국이 정책을 발표하고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스스로 정책을 뒤집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아침에 만든 정책을 저녁에 고친다는 '조변석개'(朝變夕改)나 '조령모개'(朝令暮改)라는 고사성어가 단지 우스갯소리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 4대의무를 책임지는 조세정책은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한데, 정책당국 스스로가 일관성을 무너뜨리면서 정책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
 
◇ 4일천하 세제개편안과 1주만에 뒤집힌 임대차 세제
 
사실 조세정책에 있어서 가혹하게 혈세를 빨아 먹는 '가렴주구'(苛斂誅求)보다 더 나쁜것이 '조령모개'다.
 
과다한 세금을 부담하는 것보다 세금을 언제 어떻게 더 낼지 알 수 없는 것이 국민들에게는 더 큰 위협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세제개편안 소동은 그런 점에서 초유의 사건이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소득공제를 줄이고,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중산층 이상의 근로자에 대한 세금부담을 늘리는 내용의 세제개편을 마련·발표했다.
 
비과세감면을 줄이고자하는 정책방향은 맞았지만, 증세없는 세원확보를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사실상의 증세를 하는 것인데다 그 타깃이 세원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는 '근로자'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하경제가 많은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을 놔두고 세금 걷기 쉬운 유리알지갑만 건드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세부담이 커지는 중산층의 기준도 화근이 됐다. 기재부는 연간 총급여 3450만원 이상을 중산층으로 봤지만, "그게 무슨 중산층이냐"는 조세저항이 적지 않았다.
 
여론이 들끓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서민의 지갑을 앏게하는 것은 안 된다"면서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발표한 지 불과 4일만이었다.
 
기재부 세제실에서 20여년간 근무했다는 한 전직 관료는 "그런 일은 처음봤다"면서 "처음 정책이 발표될때부터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곧바로 뒤집는 내용이 나왔다. 정책당국으로서는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혀를 찼다.
 
비슷한 일이 올 초에 다시 터졌다.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에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율을 14%로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이번에는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폭탄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에도 디테일에서의 실패였다. 그동안 과세사각지대에 있던 임대사업자를 과세범주에 넣는 방향은 맞았지만 임대사업자들의 세금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부분이나 노후에 생계형으로 임대사업을 하는 영세사업자의 세금부담이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부분이 간과된 것이다.
 
당장 1주일만에 저소득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세조치를 2년간 유예하는 수정안이 나왔지만, 여당에서조차 문제가 있다며 국회 입법과정에서의 수정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은 "부동산 정상화 조치 이후 시장이 살아나는 상황에서 오히려 동결되는 효과를 냈다. 과세조치 타이밍이 매우 안 좋았다"면서 "새누리당은 국회 입법과정에서 임대소득자 부담을 최소화하고 부동산 시장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윗선에서 중심 못잡아 세법만 난도질
 
법안 개정이 수반되는 정부 정책은 발표된 후 여론수렴과정을 거치고, 시행 이전에 당연히 고쳐질 수 있는 것이지만 최근의 사례들은 발표시점에서부터 정부의 정책설계 자체가 세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나성린 부의장은 임대시장 대책 발표 이후 "작년에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함에 따라서 중산층 세금폭탄이라는 비난이 일자 며칠 만에 세법개정안을 보완했다. 그 '탁상행정'이 다시 발생한 것"이라고 최근 조세정책 문제점을 '탁상행정'으로 비판했다.
 
특히 행정부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이 정책에서의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부화뇌동'(附和雷同 )하고 있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News1
통상 세법개정안의 경우 정부의 공식발표 이전에 청와대와 사전조율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과 질의응답과정을 거치면서 수정되거나 조율된 후 결정된다.
 
소득공제 축소를 담은 지난해 세제개편안 역시 청와대와의 사전조율은 물론 최종 발표를 앞두고 대통령에 설명하는 보고절차까지 마쳤다.
 
개편안을 최초에 마련한 기재부 세제실에서부터 중간에 조율했던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보고를 받은 대통령까지 어느 한 곳에서도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이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당시 소득세법 개정안에 대해 "깃털하나 뽑는 것"이라고 표현했던 것도 청와대가 기재부 방안에 전적으로 동의를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재부 세제실장을 지낸 전직 고위관료는 "세제개편안을 만들고 나면 청와대에서 수석들이 전부 배석한 가운데 대통령앞에서 장관과 세제실장이 몇시간 동안 하나하나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 절차를 거친다"면서 "작년과 같은 정도의 문제점이 걸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개편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가 여론이 들끓은 후에서야 "서민지갑을 얇게 하는 것은 안 된다"면서 정책을 뒤집은 것이다.
 
결국 책임의 화살은 최초에 정책을 입안한 기재부 세제실을 향했다.
 
기재부는 최근 사무관급 전보인사와 과장급 전보인사에서 세제실 인력 상당수를 타 실국으로 보냈다. 사무관은 필수인력 30%를 제외한 나머지 인력을 실국 구분없이 순환전보조치했고, 과장급도 절반이 타 실국 인력으로 채워졌다.
 
세제분야의 경우 전문인력임을 감안해서 전보를 최소화하는 관례가 있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관례가 깨졌다.
 
지난해 소득세법 개정안을 다듬었던 과장은 예산실로 사실상 쫒겨났고,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근무했던 과장급도 승진은 커녕 전출이전보다 변방직위에 배치됐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정책에 문제가 발생하면 위에서부터 책임을 져야하는데 과장이나 사무관이 책임을 지고 있다.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면서 "세제실장이 책임을 지든지 윗선에서 책임을 지고 움직여야만 정책에 힘이 생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그때 그때 뒤집는 부끄러운 일이 계속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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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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