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윤경기자] 올 초만해도 3.0%선을 넘어서던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의미 있는 수치인 2.5% 밑으로 고꾸라졌다.
28일(현지시간)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0.07%포인트나 내린(채권 가격 상승) 2.44%에 거래됐다. 특히 장중 한때는 작년 7월 초 이후 최저치인 2.43%까지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 변동 추이(자료=Investing.com)
미국 국채 금리는 올 초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영향으로 금리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시장 전문가들의 올 초 예상을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채권 수익률 상승에 베팅했던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적잖은 손실을 입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톰 시몬스 제프리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금리 하락세는 놀라운 수준"이라며 "지난 수 개월 간 금리가 계속 밀리고 있는 만큼 시장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국채 금리가 맥 없이 추락하고 있는 원인을 단순히 수급 불균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채권 공급이 줄고 있는 가운데, 수요는 예상 밖에 큰 폭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이치뱅크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현재까지 미 국채 순발행 규모는 1230억달러에 머물렀다. 전년 동기 대비 59% 급감한 수준이다. 회사채와 모기지담보증권(MBS)의 순발행 규모 역시 급감했다.
도이치뱅크는 "공급은 감소하고 있지만, 헤지펀드들의 주도로 올해 채권 선물 포지션이 작년의 숏(매도)에서 롱(매수)으로 전환하는 등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연준이 자산 매입을 축소하고 있지만 외국인·미국계 은행·연기금은 채권 매입을 확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 전망에 대한 신중론이 확산되면서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국채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시각으로 이날 저녁에 발표되는 미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수정치는 마이너스(-)0.5%를 기록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앞서 발표된 잠정치 0.1% 성장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특히, 인플레이션 지표가 여전히 저조하다는 평가는 투자자들의 '사자' 행진을 부추기고 있다. 잠잠한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저금리 기조를 정당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레링 웰스파고 스트래지스트는 "물가 상승은 채권 금리 하락을 점쳤던 투자자들에게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하지만 당분간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우려가 부각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도 대부분의 연준 위원들은 그동안의 통화정책이 갑작스러운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는 않는다고 진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톰 시몬스는 "연준이 향후 몇 년 간 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채권 금리 하락세를 견인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준과 더불어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도 채권 금리를 끌어내리는 데 한 몫하고 있다.
다음달 6일로 예정된 ECB 통화정책회의를 앞둔 가운데, 앞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겠다"며 경기 부양 가능성을 강하게 언급한 바 있다.
빌 말도나도 HSBC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의 저금리, 추세를 밑도는 성장률, 저인플레이션 흐름은 우리가 1년 전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주요 국가들이 양적양화 정책을 시행했음에도 글로벌 경제가 잠재 성장률을 밑도는 회복세를 보이며 채권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채권과 주식 시장의 괴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부각되고 있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에 따르면, 올해 현재까지 미국 채권 시장으로 유입된 자금 규모는 855억2000만달러에 이른다. 주식 시장으로 흘러간 459억8000만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글로벌 유동성이 채권에서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는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이 실종됐다는 지적도 눈에 띈다.
닉 라이치 어닝스카우트 최고경영자(CEO)는 "투자자들은 10년물 국채 수익률 2.5%를 향후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여기고 있다"며 "일부 증시 비관론자들은 주식보다 채권을 사들이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