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금호가(家) 형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정도면 죽고 죽이는 전쟁 수준이다.
이번에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맞받았다.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4000억원대의 배임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형사처벌을 원했다. 지난 수년간 공방을 벌여온 형제 간 갈등이 끝장을 봐야 하는 전면전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두 사람을 잘 아는 양측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불신과 앙금은 깊다.
금호석유(011780)화학은 지난달 12일 서울중앙지검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기옥 금호터미널 대표(전 금호석유 대표이사), 오남수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이번 고소 및 고발은 지난해 11월 경제개혁연대의 '아시아나항공 주주대표 고발'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금호석유화학 측 주장이다.
금호석유화학은 고소장에서 지난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 후유증과 풋백옵션 부담에 대한 우려 등으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고, 2009년 6월 채권단과의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 이후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 계열사를 동원한 CP 돌려막기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또 2009년 12월31일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발행한 CP 총 잔액은 4270억원 규모로,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내부거래로 이사회 결의 및 공시 의무가 없는 100억원 미만으로 나눠 발행됐고, 금호종합금융을 통해 중계됐으며 개인에게도 판매돼 약 200여명의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2009년 12월30일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은 각각 이사회를 열어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에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언론에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된 상황에서, 당일인 12월30일과 다음날인 12월31일 이틀에 걸쳐 1430억원 상당의 CP를 발행해 계열사가 매입하도록 한 것은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통한 경영권 회복이 필수적이었던 피소인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선제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상 워크아웃의 취지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오너(총수)를 위해 계열사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전가하는 배임 행위로, 시장을 교란하고 경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가 된다는 게 금호석유화학의 주장이다. '중대 범죄' 등 발언의 수위를 가리지 않는 적극적 공세다.
이에 금호석유화학은 당시 CP를 발행한 2개 회사(금호타이어, 금호산업) 및 주로 CP를 매입했던 4개 회사(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대우건설)의 대표이사였던 현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과 당시 금호석유화학의 대표이사였던 기옥 현 금호터미널 사장, 전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을 '배임'으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이 박찬구 회장을 금호석유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면서 동반퇴진했기 때문에 업무에 관여한 바가 없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채권 은행 지시로 그렇게 한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박삼구 회장과 산업은행 간 책임공방을 유도했다.
그러면서도 “박삼구 회장은 동생 박찬구 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면서도 본인은 6개 회사의 대표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했고, 산업은행이 워크아웃의 취지를 모르고 CP 돌려막기 지시를 했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며 궁극적 책임을 박삼구 회장에게 물었다.
이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CP 돌려막기 건에 대해 당시 감독당국이 사후에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지금의 동양, LIG 등과 같은 CP, 회사채 돌려막기로 개인투자자들과 계열사가 피해를 입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특정기업과 오너에 대해 봐주기식 감독과 해당기업에 사외이사 취임과 같은 관피아식 구태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끝으로 "검찰은 본 사건에 대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해 주실 것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형의 구속을 바라는 비정함에 대해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동생을 검찰과 법정에 세운 형의 경영책임과 잘못, 불법을 묻는 것"이라는 답으로 대체했다.
(자료=금호석유화학)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선대회장의 삼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은 사남으로, 바로 위아래 형제다. 박삼구 회장이 마당발로 유명할 정도로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외향적 성격이라면, 박찬구 회장은 집요하고, 조심스럽고, 소탈한, 비교적 내성적 성격으로 평가된다.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지난 2006년 대우건설 인수 과정에서 사이가 극도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이끌던 박삼구 회장이 동생인 박찬구 회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6조6000억원을 들여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이후 대우건설 인수가 금호그룹의 부실을 촉발시키면서 '승자의 저주'를 불러왔고, 이에 양측은 경영권 분쟁을 벌이게 된다.
올 초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운전기사가 박삼구 회장의 일정 등 정보를 빼돌렸다는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데 이어 금호석유화학이 아시아나 주총에서 박삼구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을 반대하는 등 일련의 사건들도 이어졌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양측의 수위가 이미 도를 넘었다며 자중지란에 명문가 금호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해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 2009년 12월 31일자 계열사 CP 매입 리스트(자료=금호석유화학)
◇금호석유화학이 증거로 제시한 금호피앤비화학 소장 및 서증(자료=금호석유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