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발전의 기초소재인 폴리실리콘.(사진=뉴스토마토 DB)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미국 상무부가 중국과 대만 태양광 패널 업체들에 반덤핑 예비 관세 판정을 내린 지 한달 반이 지났지만, 폴리실리콘 가격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반덤핑 판정으로 수출길이 막힌 중국 모듈 업체들이 재고관리에 나서면서 폴리실리콘 수요가 일시적으로 감소한 탓이 컸다는 분석이다. 특히 태양광발전 설치량이 급증하는 4분기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는 터라, OCI와 한화케미칼 등 국내 태양광 업체들의 속은 그야말로 바짝 타는 형국이다.
12일 태양광 시장조사기관 PV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폴리실리콘 가격은 킬로그램(kg) 당 20.58달러로 나타났다. 전주 대비 0.1% 하락한 수치로, 폴리실리콘 가격은 지난 7월 말 20달러대로 내려앉은 뒤 7주째 약보합세를 기록하고 있다.
태양광 업계에서 통상 하반기는 계절적 성수기로 통한다. 태양광발전은 설치단가가 비싼 탓에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각국 정부마다 연간 단위로 태양광발전 설치목표와 보조금을 책정한다. 때문에 태양광발전 설치량은 3분기부터 늘기 시작해 한 해의 보조금 정책이 종료되는 4분기에 정점을 찍는다. 이듬해 정부 보조금 삭감을 예상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
그러나 올 3분기는 수요가 주춤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중론이다. 계절적 성수기인 하반기에 접어들었음에도 폴리실리콘은 물론 모듈까지 뜨뜻미지근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 7월 말 중국과 대만 태양광 업체에 반독점 예비관세를 부과함에 따라 냉각기가 찾아왔다는 분석이다.
이번 반덤핑 예비 판정으로 중국 트리나솔라가 26.33%, 잉리솔라와 우시 선테크파워가 각각 42.33%씩 관세를 부과받았다.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앞세운 중국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 사실상 철퇴를 맞게 됐다. 유럽에 이어 미국까지 수출길이 사실상 막히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문제는 중국 기업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 여파가 국내 기업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는 데 있다.
OCI(010060)와
한화케미칼(009830) 등 국내 폴리실리콘 생산업체들의 주요 수출국이 중국과 대만업체에 집중돼 있다 보니 관세 부담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중국 기업들은 지난 2012년부터 해마다 자국과 미국의 무역분쟁을 경험한 터라 최종 판정에 예의주시하며, 재고 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폴리실리콘과 모듈 가격이 주춤한 것도 이 같은 시장 상황을 염두에 둔 중국 기업들이 생산량 조절에 나선 결과라는 설명이다. 일종의 '눈치보기 전략'이라는 얘기다.
태양광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수출 길이 막히면서 무작정 생산하기보다 재고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중국 모듈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면서 모듈과 원재료인 폴리실리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대만 업체들의 반덤핑 관세 부과에 따른 반사이익을 국내 기업이 누리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한국으로 우회해 미국 수출을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
하지만 관련 업계는 중국 기업들의 우회 수출 전략보다 정부의 내수확대 정책에 희망을 걸고 있다. 중국 정부가 미국, 유럽연합 등과 무역분쟁으로 수출길이 막힌 자국 산업을 보호할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중국 국가에너지위원회가 태양광 분산형 발전 촉진 방안을 발표하고, 태양광발전 설치를 장려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앞서 중국 정부는 올해 태양광발전 시설 설치목표를 14GW(기가와트)로 설정했지만, 올해 상반기까지 설치된 물량은 26%인 3.6GW에 불과한 실정이다. 태양광발전소 건설에 대한 허가권이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되는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하면서 설치량이 극도로 부진했다.
특히 하반기에는 자국 기업들이 미국의 반덤핑 예비판정 관세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중국 정부는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올해 남은 기간 중국에서 수요가 얼마나 뒷받침되는 지에 따라 국내 폴리실리콘 업체들의 실적도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폴리실리콘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반덤핑 예비판정의 부정적 효과를 상쇄하는 길은 결국 중국 내수 확대 밖에 없다"면서 "중국의 태양광발전 설치량 증가에 따른 수요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