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산업의 큰별이었던 이동찬 코오롱 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9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있다.ⓒNews1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우정(牛汀)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8일 오후 4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1922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2년 수료하고 부친인 고(故)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를 도와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 명예회장은 1957년 4월 부친과 함께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하고 국내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해 한국 섬유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설립 20주년이 되던 1977년에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취임, 화학·건설·제약·전자·정보통신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며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
그의 경영관은 코오롱그룹의 경영 이념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산업인의 사명에 투철하고 능률과 창의로써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는 보람찬 일터를 만들며 인간 생활의 풍요와 인류 문명의 발전에 이바지한다." 이 명예회장이 제정한 경영이념은 직원과 회사의 성공을 도모함과 동시에 국가와 세계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는 1982년부터 1996년1월까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올바른 노사관계 정립과 기업윤리의 확립에 앞장섰다는 평가다. 아울러 1983년부터 3년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섬유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섬유백서'를 발간하는 등 섬유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이 명예회장은 대한농구협회 회장과 대한골프협회 회장, 2002 한·일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 초대 위원장도 역임하며 아마추어 스포츠 발전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이바지했다. 특히 코오롱구간마라톤대회, 코오롱마라톤팀 등을 창설해 대한민국 마라톤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손기정 선수 이후 56년 만에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마라톤 금메달을 따내는 데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1996년 코오롱그룹 회장 퇴임 이후에는 미술 작품 활동에 전념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지난 1992년 고희전(古稀展), 2001년 팔순전(八旬展)에 이어 2009년에는 미수전(米壽展)을 열었다. 2001년부터는 '우정선행상(牛汀善行賞)'을 제정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까지 선행인들에게 직접 시상을 할 만큼 우정선행상에 대해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고인은 1982년 기업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49년간 기업인으로서 대내외의 존경을 받았다. 1992년에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국내 최고의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수장했다.
이 명예회장은 1945년 신덕진 여사(2010년 작고)와 결혼해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을 비롯해 1남 5녀를 뒀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코오롱그룹장으로 치러지고 발인은 12일 오전 5시다. 장지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묘원이다.
한편 경영계는 이날 이 명예회장의 별세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내 섬유산업의 산증인으로 화학섬유의 해외 수출을 통한 국가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 문화 발전에도 기여도가 컸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고인의 명복을 기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고인은 1982년부터 14년간 본회 회장을 지내시며 노사관계 안정 기반을 마련하고, 1989년에는 경제단체협의회를 설립하여 재계를 이끌어 오신 분이기에 경영계의 슬픔은 더욱더 크다"면서 "경영계는 앞으로도 노사의 화합을 통해 국가와 세계에 기여해야 한다는 고인의 뜻을 새길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