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국내 최대 게임업체 넥슨이
엔씨소프트(036570) 경영 참여를 선언하고, 엔씨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양사의 경영권 분쟁의 향방에 관련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지난 27일 넥슨은 자사 일본 법인과 넥슨코리아가 보유한 엔씨소프트 주식 330만6897주(지분 15.08%) 보유 목적을 기존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가'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엔씨의 최대주주인 넥슨의 이번 결정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현실화할 것으로 시장은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넥슨이 밝힌 엔씨소프트 지분 보유 목적을 더 살펴보면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이사회 등 회사의 기관과 관련된 정관의 변경 ▲자본금 변경 ▲배당 결정 ▲회사의 합병, 분할과 분할합병 ▲주식의 포괄적 교환과 이전 ▲영업전부의 양수·양도 등 ▲자산 전부의 처분 ▲영업 전부의 임대 또는 경영 위임, 타인과 영업의 손익 전부를 같이 하는 계약 등 ▲회사의 해산 등이 포함돼 있다.
다만, 김택진 엔씨 대표는 9.9%의 지분을 갖고 있고, 자사주 지분이 8.9%, 국민연금 지분이 6.8%여서 추가 지분 취득이나 우호 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권 경쟁도 충분히 예상된다.
이미 엔씨는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엔씨 관계자는 "이번 투자 목적 변경은 지난해 10월 밝힌 '단순 투자목적'이라는 공시를 불과 3개월 만에 뒤집은 것"이라며 "현재의 경영 체제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NDC 2014'에서 김정주 넥슨 대표(左)는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넥슨일본법인과 넥슨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경영진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밝혔다. (사진= 넥슨)
◇넥슨과 엔씨, 만남부터 경영권 분쟁까지
배경을 살펴보면 이렇다. 지난 2012년 6월 당시 넥슨 일본법인은 김택진 엔씨 대표의 지분 14.7%를 25만원에 사들였다. 당시 엔씨 주가는 27만원대였으나,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회장과 김 대표의 신뢰 관계에 따라 할인 매각된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마련된 실탄으로 글로벌 게임 업체 EA(Electronic Arts)를 인수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고, 양사가 추진한 '마비노기2 프로젝트'도 불발에 그치면서 회사 DNA가 다르다는 점만 확인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넥슨이 엔씨의 주식 0.4%를 더 사들이면서 보유 지분이 15%를 넘어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엔씨소프트의 경영권이 바뀌는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공시로 지분율과 경영진이 변하지 않았으므로 기업결합과 관련해 재심사할 계획은 현재 없다"며 "다만, 경영진과 지분율 등에 변화가 있을 경우 기업결합과 관련해 곧바로 재심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간은 흘러 지난 22일 넥슨은 엔씨에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하겠다고 통보했고, 엔씨는 다음날인 23일 김택진 대표의 부인 윤송이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양사 모두 윤송이 사장 승진과 이번 결정은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엔씨에게 넥슨은 경영 참여자가 아니라 최대주주일 뿐이었으나, 넥슨은 엔씨를 통한 시너지가 나타나지 않고 수익도 거두지 못해 고민이었다. 넥슨 측은 "김택진 엔씨 대표가 '협업해서 글로벌 시장을 헤쳐나가자'고 말했으면서 이제 안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쪽에서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엔씨 측은 그러나 "당시 지분 매각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포함됐다면, 25만원에 팔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넥슨 관계자는 "지난 2012년 6월 첫 투자 이후 올해 1월23일까지 원화기준으로 엔씨 주가가 25만원을 넘은 날이 전체 거래일의 7%도 안 된다. 지난해 10월 엔씨 지분을 12만원대에 추가 매입한 것 또한 이 기업의 본질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해 장내 매수한 것"이라며 "또한 양사 신뢰 아래 경영 참여 관련한 얘기를 나누자고 끊임없이 얘기했고, 그것이 잘 안 돼 공식적으로 대화 나눠보자고 메시지를 던진 게 이번 공시"라고 설명했다.
반면, 엔씨는 "지난해 신규 MMORPG 게임의 글로벌 시장 진출과 모바일 게임 개발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경영 성과를 기록했다"며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지난해 12월 창사이래 최대 주주 배당 규모인 685억원을 의결했고, 지스타 게임쇼를 통해 차기 게임들의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또 엔저 효과로 오히려 넥슨이 이익을 얻었다고 엔씨 측은 보고 있으나, 넥슨 측은 엔씨의 주식을 처분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엔씨는 넥슨의 과거 M&A 역사를 돌이켜 봤을때 이번 넥슨의 결정과 향후 움직임이 회사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엔씨 측은 "양사는 게임 개발 철학과 비즈니스 모델 등이 이질적이어서 이번 일방적인 경영 참여 시도는 시너지가 아닌 엔씨의 경쟁력의 약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에 넥슨은 "M&A에는 무수한 실패와 성공사례가 있는데, 넥슨만큼 성공 사례를 많이 가지고 있는 기업도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의 위젯, 던전앤파이터의 네오플, 서든어택의 게임하이(현 넥슨GT), JCE(현 조이시티) 등을 인수해왔다. 네오플 인수 등은 성공적이란 평가가 있으나, 지난 2012년 감마니아 인수 추진 당시 대만 정부로부터 절차상 문제로 벌금 선고를 받은 것이나 일부 서비스 종료 사례를 보면 우려된다는 것이다. 캐주얼 게임, M&A, 퍼블리싱 정체성이 강한 넥슨과 오랜 기간 게임을 개발하는 엔씨의 DNA가 다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경영권 분쟁이 어떤 식으로 봉합되더라도 워낙 큰 기업간 다툼이므로 양사에 다양한 형태의 상처만 남길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사진=뉴스토마토)
◇3월 정기 주주총회 전 오를 안건에 '관심'
시장에서는 오는 3월로 예정된 엔씨소프트의 정기 주주총회 안건에 주목하고 있다. 정확한 시일은 미정이나, 통상 1개월 전에 주총에 오를 안건이 공개되는 만큼 2월 중으로 넥슨의 정확한 속내와 엔씨의 대응이 확인될 것으로 관련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경영진 교체와 구조조정도 관련 업계에서 거론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결정된 것은 없는 상태다.
안재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김택진 엔씨 대표의 결정에 따라 변수가 나타나겠지만, 개발자
와 CEO의 게임 개발 철학이 중요한 게임 회사의 특성상 두 회사 간의 마찰이 장기적으로 핵심 개발 인력 이탈이나 경영진 간의 대립, 게임 출시 지연 등이 나타난다면 엔씨의 실적에 긍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택진 엔씨 대표가 넥슨에 지분을 매각할 당시 25만원보다 비싼 가격에서 지분율 싸움에 나설 가능성 또한 예단하기 어렵다.
넥슨과 엔씨는 강경한 태도로 이번 분쟁에 나선 모양새이지만, 물밑 의견 조율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넥슨 관계자는 "주총에 오를 안건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엔씨와의 조율을 통해 구체적인 협력 체계를 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엔씨 관계자도 "채널을 열어놓고 대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