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맛지도 (대학생의 마음을 동하게 한 맛집 지도)
- 1989년, 일본 ‘북해정(北海亭)’우동집
“아, 춥네요. 어서 들어갑시다.”
“いらっしゃいませ!(환영합니다)”
이곳은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동화, ‘우동 한 그릇’의 가게 ‘북해정(北海亭)’이다. ‘북해정(北海亭)’은 소설 ‘우동 한 그릇(1989)’에서 섣달 그믐날 춥고 깜깜한 겨울밤 언 손과 마음을 녹여주는 우동 가게이다. 우동 집 사장 부부의 배려가 보글보글 우러나오는 따듯한 공간이다. 물질 만능주의에 지친 현대인에게 준 따끈한 소울 푸드(soul food), 우동 한 그릇이 준 감동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온기가 여전히 전해지고 있다.
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 2015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국수카페’ 국숫집
“어, 딸내미 어서 와”
◇사진=바람아시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경희대와 한국외대 사이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 동네 사랑방과 같은 국수가게가 나온다. 희끗희끗 고운 잿빛 머리에 엄마가 집에서 사용할 것 같은 앞치마와 두건을 쓴 이모가 반겨준다. 빨간 국물 말고, 담백하고 시-원한 멸치 육수가 생각나는 추운 겨울날, 이곳에 오는 손님은 대부분 혼자다.
자취생이거나 기숙사에 살면서 엄마 밥이 생각나는 대학생들이 찾아온다. 후루룩후루룩 하얀 소면을 크게 한 입 오물오물하면서 시-원한 멸치 육수 국물을 들이마시면 꽉 찬 입만큼 배도 마음도 든든해진다. 마음이 허한 건지 배가 허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모가 건네주는 담소는 잔치국수의 한 숟갈 양념간장처럼 구수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더해준다.
◇사진=바람아시아
시-원한 멸치 육수에 달걀을 휘휘-풀어 짭조름한 김 고명을 툭 뿌리고, 아빠 수저로 양념간장으로 한 큰술 탁 넣으면 따끈한 잔치국수 한 그릇이 완성된다. 국물 맛도 꾸밈없이 담백하니 시원하다. 잔치국수만큼이나 비빔국수도 인기가 많다. 김치쏭쏭 썰어 새콤달콤하게 양념한 비빔국수는 이곳의 대표메뉴 중 하나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고민하는 것처럼 이곳도 역시 ‘잔치국수냐 비빔국수냐’ 매번 고민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박빙이지만 그래도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잔치국수의 인기가 조금 더 높긴 하다.
자취생의 소울 푸드(soul food), 국수 한 그릇
◇사진=바람아시아
지금은 규모가 커져서 제법 ‘카페’의 형색으로 커졌지만 원래 국수카페는 2010년 6월 25일 몇 평 안 되는 조리공간에 주차장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시작하였다. 수많은 음식 메뉴 중에서 국수카페 이모가 ‘국수’로 장사를 시작한 계기 첫 번째는 바로 ‘국수의 빠른 테이블 회전율’이다.
후루룩 후루룩 몇 번 젓가락질 하다가 국물 한 모금씩 들이키면 어느새 국수 한 그릇이 뚝딱이다. 주로 혼자서 오는 학생들도 한 그릇 뚝딱하고, 가볍게 이모에게 인사하고 다시 슬리퍼를 끌고 도서관이나 집으로 돌아간다. 얇은 대학생 지갑에 나오는 2500원이라는 가벼운 가격이지만 포만감은 절대 가볍지 않는 든든함을 준다.
◇사진=바람아시아
두 번째 이유, ‘반찬이 필요 없는 메뉴’이다. 휘휘 푼 달걀과 야채 한 줌, 양념간장 한 큰 술, 마무리로 약간의 김 가루는 맛난 반찬이요, 시원한 멸치 육수는 최고의 국물이다. 이전에도 식당을 운영했던 이모는 ‘국수를 하면, 따로 반찬을 할 필요는 없겠구나!’라는 나름의 꼼수(?)로 시작을 했다. 그런데 이모의 꼼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 그릇, 두 그릇 나가는 국수만큼이나 이모와 이문동 청년들은 ‘사장님’이 아닌 ‘이모님’으로 사장과 손님 이상의 관계가 되었다. 국수카페가 1년 정도 되니, 이문동과 회기동 청년들의 ‘이모, 나물이 먹고 싶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비빔밥’이라는 메뉴를 내놓았다. 반찬으로 어중간하게 나물을 내놓는 게 아니라 3천원에 셀프로 먹고픈 만큼 덜어 가져가는 비빔밥이었다. 밥만큼이나 가져가는 나물에 괜히 이모한테 미안한 마음마저 들기도 하다. 그런데도 달걀 프라이 올려주겠다고 가져오라고 하는 이모의 정에 남기지 않고, 싹싹 먹었다.
국수카페의 주요 고객이 자취생인 만큼 하루 식사를 다 해결하는 자취생도 많다. 국수카페만의 식단만으로는 탄수화물만을 섭취하고 있다는 생각에 단백질을 공급해주고자 국수카페에‘제육덮밥’이 등장하게 되어 자취생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방학 중에 집에 내려가지 않는 자취생들을 위해서 일주일에 하루는 5천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반계탕, 감자탕 등 고기가 있는 스페셜 메뉴를 내놓고 있다.
◇사진=바람아시아
착한 식당, 국수 카페
착한 식당의 3요소. 맛과 양 그리고 가격이다. 국수 카페의 평균가격은 3천원을 넘지 않는다. 대학가에서 학생식당을 제외하고, 5천원 한 장으로 식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모가 가격을 책정하는데 고려한 대상은 대학생 자취생보다 이들의 ‘부모’였다. 이모 또한 사장이기 전에 학부모였다.
내 아이는 부족함 없이 잘 생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내는 ‘생활비’에 대한 부담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국수카페에 와서 식사하는 청년들의 부모들이 생각이 안날 수가 없었다. 국수카페의 가격이 착한 이유는 학생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바로 그 학생들에게서 보이는 이모 자신과 같은 대한민국의 부모들의 모습이 떠올라왔기 때문이다.
‘국수가게’가 아닌 ‘국수카페’인 이유에 주목하자. 카페라는 공간에서는 사람들과의 만남의 장소, 소통의 공간이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담소를 나눠도 그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것처럼‘국수카페’ 또한 소통의 대안적 공간이다. 밥 다 먹고, 바로 계산하고 안 나가도 좋은 이문동 동네 사랑방이다.
이모는 자신의 장사도 중단하고, 오히려 식당 손님을 초대하여 함께 즐기고 나누는 축제의 장으로 자신의 가게를 흔쾌히 내준다. 이모의 부엌은 나눔 부엌이 되고, 국수카페는 공유의 장이 된다. 경희대와 외대 사이라는 지리적 특성에 따라 이 공간은 두 학교의 교류 플랫폼이 되기도 하다. 태국,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외국인 외대 학생들과 경희대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나라의 음식을 가지고 오기도 하고, 이모의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함께 공유하는 놀이터가 된다.
◇“이 공간은 내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온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해.”(사진=바람아시아)
자신의 사유공간을 공유공간으로 확대시킨 이유에는 국수카페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한 주변 이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지금 현재의 자리는 문화사가 있었던 자리였다. 문화사 사장님이 이전하는 과정에 국수카페의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물심양면으로 많은 지원을 해줬다. 이에 이모는 이웃들의 응원으로 왔기에 나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곳을 찾아오는 이웃들의 공간, 열려있는 곳이라고 한다.
착한식당을 다시 조명하고 싶어 선정한 국수카페이기에 사장이자 이모가 생각하는 착한식당의 정의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난 내가 착한식당의 자격이 있나 모르겠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자 옆에서 개를 안고 있던 동네 주민 한분이 “그냥 싸고, 맛있고, 푸짐한 거지.”라며 대신 대답한다. 다시 이모가 말을 이어나가길 “그냥 맛있게 먹어주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고, 먹어서 배탈 나지 않게 끔만. 더 붙일 필요도 없이.”국수 맛이 왜 꾸밈없이 소박하고, 담백한지 알 수 있었다.
우동 한 그릇과 국수 한 그릇
소설 ‘우동 한 그릇’의 마지막 장면에는 사장부부의 따듯한 사랑이 담긴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며 용기를 얻어 열심히 살아간 두 청년이 의사와 은행원이 되어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14년이 지난 섣달 그믐날 밤 다시 북해정을 찾아온다.
국수카페를 배경으로 한‘국수 한 그릇’의 결말은 이보다 다소 유쾌하다. 이모는 우스갯소리로 학생들에게 “나중에 취업하면 쌀이나 보태줘~”라고 한다. 입에 국수를 한 가득 문채로 “어휴, 그럼요.”라고 대답을 한다. 실제로 이모의 국수카페에는 공약(?)을 지킨 청년들이 있다. 그럴 때 마다, 이모는 그 쌀로 그날의 밥을 하얗게 짓는다. 그리고 가게 문 앞에는 “000이가 쏜다!”라는 팻말이 붙는다. 그 쌀값에 따라 이모도 축하의 의미로 수박을 준비하여 오는 손님들과 학생들에게 좋은 소식과 수박을 함께 나눈다. 대학을 졸업하였어도, 이모의 가게를 찾는 청년들은 여전하다.
이모를 인터뷰한 주에 민족 대명절인 구정이 있었다. 방학기간이라 손님은 줄었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여전히 혼자 있는 자취생마다 이모는 떡만둣국 끓여 먹으라고 만두를 챙겨주시려고 한다.
가벼운 지갑이지만 이모가 말아주는 국수 한 그릇에 든든해진 배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고, 해장하기도 하면서 ‘국수 한 그릇’은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청년 시절의 소울 푸드(soul food)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