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직업상 사람을 많이 만나는 김모(60) 씨는 최고급 사양의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기능을 잘 모르지만 왠지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서다. 스마트폰을 살 때 대리점 직원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시키는대로 했더니 3년 약정으로 구매하게 됐다. 100만원대의 고가 제품인 탓에 스마트폰에 케이스를 씌우는 등 신경을 많이 썼지만 액정파손만으로 2년 동안 4번 수리를 받았다. 액정 한 번 바꾸는데 20만원 돈이 드는 것을 감안하면 차라리 다소 낮은 사양의 스마트폰을 마음 편하게 사용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김씨처럼 중저가폰으로 눈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저성장과 불황의 여파 속에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아울러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이후 불법 보조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프리미엄폰을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줄어든 것도 한 요인이다.
더욱 근본적인 이유도 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고가임에도 '2년폰'이라는 비아냥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 이문동에 거주하는 한모(33) 씨는 "100만원대의 프리미엄 제품이라고 해도 2년이 지나면 배터리와 프로세서 등의 성능이 낮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며 "차라리 중저가폰을 여러 번 사용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결과에 따르면, 프리미엄폰 이용자의 절반인 50.1%가 향후 중저가폰 구매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중저가폰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55.4%도 다음에 중저가폰을 또 구매하겠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경향은 이동통신사들의 요금제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 1월 발표한 '단말기 유통법 시행 3개월 시장동향'을 보면, 저가요금제 가입이 늘었다. 단통법 시행 후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3만원대 요금제 가입자 비중은 법 시행 전인 7∼9월에 비해 5%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소비자가 이통서비스에 가입할 때 선택하는 요금제 평균도 4만5000원에서 3만9000원으로 낮아졌다.
◇(왼쪽부터)삼성전자의 '갤럭시 A5'와 LG전자의 중저가폰 새 라인업.(사진=각사)
상황이 이렇자 단말기 제조사들도 보급형 스마트폰의 대상을 중장년층에서 청년층으로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스마트폰과 중저가폰의 성능 격차도 줄고 있다. 과거 보급형 스마트폰은 저렴한 가격에 기본 기능만 갖췄지만, 최근에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핵신 기능들도 상당수 탑재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갤럭시 그랜드 맥스', ‘갤럭시 A5', '갤럭시 A7'등을 출시했다. 갤럭시 A7'은 메탈소재의 디자인에 셀프 카메라 기능을 제공한다.
LG전자(066570)는 기존 F시리즈, L시리즈 등 보급형 라인업을 '마그나', '스피릿', '레온', '조이' 등 4종으로 개편했다. 여기에 프리미엄 스마트폰용 스펙들이 대거 적용됐다. 마그나와 스피릿에는 최신 전략 스마트폰 'G플렉스2'에 적용된 커브드(곡선) 디자인이 적용됐다. 아울러 손바닥 상태에서 주먹을 쥐면 자동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제스쳐샷', 화면이 꺼진 상태에서도 시간 등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글랜스뷰' 등도 적용됐다.
외산폰들도 가세하고 있다. 소니와 화웨이, 에이수스, 에이서 등이 중저가 제품을 내놓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SNS·전화·문자·사진촬영 등 전체 기능의 40% 수준밖에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최신 IT기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용목적과 무관하게 최고급 폰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에는 현명한 소비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지면서 실효성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