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수산업은 예로부터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였다. 우리 조상들은 쪽배를 타고 연안에 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고기잡이를 해 가족을 부양했다. 일부 작물을 제외하고 그들이 잡은 생선은 부족한 단백질 등을 채워주는 거의 유일한 식재료였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해산물은 더이상 생존의 필수 식재료가 아니게 됐지만 그 인기는 오히려 높아졌다. 2012년 기준 전세계의 해산물 소비량은 연 19.2kg인데 반해 한국은 그 3배에 가까운 54.9kg을 소비한다. 소비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명태, 고등어 등이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면 최근에는 단연 '참치'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연간 참치 소비량은 세계 3위, 그리고 참치통조림 소비량은 아시아 1위다. 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한국 기업의 선단은 태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어획량 세계 3위, 원양참치 조업량 세계 2위 등 수산 강대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불법조업, 환경파괴 등의 부작용도 함께 드러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우리가 늘 접하는 참치 통조림이 단순한 상품이 아닌,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태현 그린피스 해양 캠페이너는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수산강대국의 해양 생태계 파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뉴스토마토)
◇무분별한 수산물 남획…이대로 가다간 모두 공멸
"학창시절을 영국에서 보냈습니다. 영국에는 이미 지난 1970년대와 80년대에 진행된 캠페인을 통해 '돌고래 혼획으로부터 안전한 조업방식으로 잡힌 수산물'이라고 알려주는 인증라벨이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소비자가 대형 슈퍼마켓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 '지속가능한 조업방식으로 잡힌 수산물'이나 '해양환경을 해치지 않는 채낚기(고기를 낚시로 채서 잡는 전통적인 조업 방식) 낚시법으로 잡힌 수산물'이 어떤 제품인지 알 수 있는 인증라벨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일찍 이같은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박태현 캠페이너는 중학교 때 영국으로 건너간 후 스코틀랜드에서 해양생물학을 공부하고 독일, 스페인, 벨기에 등지에서 해양생물 다양성과 보존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린피스에 합류한 지는 1년이 갓 넘은 젊은 활동가다.
"해외 생활 당시 한국에서는 소비자가 수산물이나 참치통조림을 구매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인증라벨이나 가이드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이런 문제인식을 가지고 있던 차에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서울사무소에서 2012년 시작한 캠페인의 성과로 지난 2014년 국내 처음으로 지속가능한 '착한참치'가 출시된 것을 보고 참치캠페인에 동참하게 됐습니다."
박 캠페이너는 현재 태평양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참치 조업이 굉장히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이유는 생태계 파괴다.
"우리가 소비하는 참치는 크게 8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세계자연보전연맹에 따르면 이 중 날개다랑어, 남방참다랑어, 대서양 참다랑어, 눈다랑어, 황다랑어 등 5종은 심각한 '멸종 위기종' 혹은 '멸종 취약종'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나머지 3종도 '관심필요종'입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횟감인 눈다랑어나 황다랑어는 거의 멸종위기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흔히 참치캔으로 접하게 되는 가다랑어 또한 관심이 필요한 종인데요. 이 말은 가다랑어가 당장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지금의 속도로 남획하면 머지않아 멸종위기종, 혹은 멸종취약종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는 뜻이죠."
◇싹쓸이 조업방식, 생태계 파괴의 주범
"최근 40년간 전체 어자원의 30%는 이미 지속가능성의 범위를 넘어 회복 불가능한 '남획(over fished)' 상태며, 61%는 지속가능성 위험 범위의 끝자락에 도달할 정도로 '착취(excessively fished)'된 상황입니다. 둘이 합쳐 약 91%의 해양생물이 멸종 위기이거나 개체수가 멸종 위기에 근접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 미국, 영국 등의 생태학자와 경제학자 십여명이 공동 집필한 사이언스지의 논문에 따르면 2048년에는 현재 어획되는 모든 해양동물의 90%가 바다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가 돼서 후회하면 너무 늦은 셈이죠."
참치를 잡는데 왜 해양생물 전체가 사라지는 것인지 궁금해졌지만, 의문은 이내 풀렸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수산강국들의 해양자원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싹쓸이 조업' 때문이다.
"참치의 멸종에 크게 이바지하는 것은 바로 '죽음의 덫'이라 불리는 집어장치(FAD)입니다. 선단들은 바다 위에 부유물을 띄워 해양생물에게 일종의 '쉼터'를 제공합니다. 이 FAD에는 참치뿐 아니라 모든 어종이 모여들죠. 작은 물고기부터 이들을 잡아먹기 위한 대형 어종까지 그 수는 어마어마합니다. 이것들을 거대한 그물로 한꺼번에 잡아 올려요. 바다거북, 상어, 가오리 등등 수많은 생물들이 딸려서 올라옵니다. 선원들은 이들이 죽든 말든 신선도를 위해 일단 참치만을 골라 냉동실에 넣습니다. 그 후에야 죽어 있는 나머지 사체들을 바다에 모두 버립니다. 물론 상어는 고급 식재료인 지느러미를 자른 채 말이죠."
그렇다면 동원산업, 사조산업, 신라교역(오뚜기 참치공급업체) 등 우리나라 선단의 경우는 어떨까. 박 캠페이너는 이들 역시 FAD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FAD의 이용빈도는 낮습니다. 그리고 한국 선장들은 집어장치를 이용하지 않고서도 참치 떼를 포착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국내 어선들은 이 장치를 사용합니다. 문제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인 FAD가 허용된 시기와 범위 안에서만 사용된다면 불법이 아니라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치를 이용하면 할수록 치어들이 사라지며 해양자원 고갈에 근접할 것입니다."
◇소비자 먼저 나서야…'착한 참치' 활성화 주력
참치캔은 지난해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각종 '쿡방(요리방송)'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식재료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해가 갈수록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 반찬'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 캠페이너는 국내 참치캔 제조 업체들이 어떠한 품종의 참치를 사용해 어떻게 만들었는지 소비자가 알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참치캔 뒷면을 보면 두루뭉실한 '다랑어'라는 표현이 보입니다. '가다랑어 98%, 황다랑어 2%' 이런식이 아닌 것이죠. 참치가 종류별로 구분돼 항구에 내리기 때문에 조업자들이나 참치캔 제조 업체들은 잡힌 참치의 종류와 비율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선은 소비자들이 섭취하는 참치 품종을 알고 그것이 멸종위기종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서부터 인식의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박 캠페이너는 집어장치 없는 조업(패드프리)이나 채낚기를 이용해 생산한 참치캔을 소비자들이 인식하고 구매하는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동원, 사조, 오뚜기 등의 제품에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제품과 아닌 상품이 구분되지 않고 판매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윤리적인' 참치캔을 구입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다.
"2014년 11월 행복중심생협이라는 곳에서 '착한참치'를 출시했습니다. 이는 몰디브에서 채낚기 방식으로 잡힌 참치로 만든 통조림으로, 현재 한국의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지속가능한 참치캔'입니다. 앞으로 현재 국내 업체들도 함께 파괴적인 조업방식을 이용하지 않은 제품을 대상으로 인증마크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물론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들이 스스로 이같은 일을 해주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요구가 필요한 사항입니다. 이후 소비자들이 이같은 참치를 선호하기 시작하면 기업의 인식도 달라질 것입니다."
■박태현 그린피스 해양 캠페이너 프로필
-서울 출생
-영국 덜햄학교
-영국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 해양생물과 졸업
-벨기에 켄트 대학 해양 생물다양성과 보존학 대학원 석사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해양 캠페이너
-불법어업 캠페인 2015
-지속가능한 참치 캠페인 활동
그린피스 환경탐사선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피터 윌콕스 선장과 박태현 캠페이너가 감시활동을 마치고 부산항에 입항하고 있는 모습. (사진=그린피스)
이철 기자 iron62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