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보험사 '대변'하는 금융감독원

입력 : 2016-03-03 오전 10:00:00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흉부외과의사들이 분노한 이유
 
최근 필자는 흉부외과 의사들의 모임인 하지정맥류연구회에 참석했다. 하지정맥류란 다리의 정맥혈관 안에 있는 판막(문짝)이 고장 나서 다리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질병을 말한다. 다리가 붓고, 통증이 있고, 쥐가 자주 나며, 방치하면 말초혈액순환 장애를 일으켜 피부의 변색과 괴사를 발생시킬 수 있다. 게다가 정맥혈관의 압력이 높기 때문에 출혈이 발생할 경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어 적절한 시기에 치료가 요구된다. 그런데 하지정맥류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연구회에서 이 날은 웬일인지 흉부외과 의사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성토 대상은 다름 아닌 금융감독원이었다. 왜 금감원을 흉부외과 의사들이 성토하게 되었을까.
 
지난해 말, 금감원은 의료실비보험에 대한 표준약관을 개정해 보험사들에게 하달했다. 현재 의료실비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들은 개별약관을 사용하지 않고 금감원에서 만드는 표준약관을 따르도록 되어 있어 전체 보험사에 적용된다. 그런데 금감원에 의해 변경된 표준약관 중에는 보험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고 보험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변경된 약관은 의사들에게 옛날 수술방법을 사용할 것을 강요해 애꿎은환자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흉부외과 의사들이 분노한 이유다. 
 
슬그머니 보험약관 바꾼 금융감독원
 
하지정맥류의 기존 치료방법은 '째고 뜯어내는' 방식이었다. 다리에 메스를 가해 고장난 혈관을 모두 뜯어내는 소위 '스트리핑' 방식이었다. 혈관 속으로 가느다란 레이저나 고주파 카테터를 삽입해서 정맥을 폐쇄시키는 간단한 치료방법이 도입된 이후에는 대부분 레이저 또는 고주파 치료방법으로 바꿨다. 레이저 및 고주파 치료는 기존 수술과 달리 흉터가 전혀 남지 않고 회복이 빠르면서도 효과가 우수하다. 현재 거의 모든 나라에서 레이저 또는 고주파 치료가 하지정맥류의 기본적 치료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금감원은 금년 1월1일 신규 가입자부터는 민간보험사에서 예전 '뜯어내는' 방식의 치료만 보험금을 지급토록 표준약관을 슬그머니 바꿔놓았다. 퇴행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까지 의료실비보험을 가입한 사람들은 레이저나 고주파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올해부터 가입한 사람들에게는 옛날 방식대로 '째고 뜯어내는 수술'을 받아야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흉부외과 의사들은 환자의 보험가입 시점에 따라 서로 다른 방법으로 수술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의학적으로 틀린 표준약관
 
금감원은 표준약관에서 보장에서 제외되는 항목에 '외모개선 목적의 다리 정맥류 수술(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대상 수술방법 또는 치료재료가 사용되지 않은 부분은 외모 개선 목적으로 봅니다)'을 추가했다. 언뜻 이해가 어려운 이 문장의 본뜻은 "레이저나 고주파를 이용한 하지정맥류 수술은 외모 개선 목적으로 봅니다"이다. 하지정맥류를 레이저나 고주파를 이용해서 치료 받는 경우 쌍꺼풀이나 코를 높이는 성형수술처럼 외모 개선 목적을 위한 것으로 간주하고 의료비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이 문장은 의학적으로 완전히 틀렸다. 다리의 정맥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하지정맥류는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이며, 하지정맥류를 치료하는 방식은 예전의 '째고 뜯어내는' 수술방법에서 주사바늘을 통해 레이저관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이미 바뀌었다. 표준약관을 변경한 금감원의 담당자는 하지정맥류 치료를 위한 혈관 레이저를 기미를 없애는 피부 레이저와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소비자가 아닌 보험사 이익을 대변하는 금융감독원
 
필자는 불합리한 표준약관의 출처가 금감원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금감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업무 등의 수행을 통하여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고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정부 기관이다. 그리고 금감원의 홈페이지에는 "사회적 약자인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금융소비자 피해를 적극적으로 구제·예방하고, 불합리한 제도·약관·금융관행을 신속히 개선하여 금융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겠다"고 씌여있다.
 
그러나 금감원의 행태는 이와 반대다. 금감원이 이번에 마련한 표준약관은 불합리한 약관을 감시해야 할 감독당국이 오히려 민간보험사의 이익을 대변하고 소비자의 권익을 명백히 침해한 사례다. 보험기업을 감독해야 할 정부기관이 보험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황에서 금감원과 기업간의 밀착관계가 의심된다면, 이것은 지나친 의심일까.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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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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