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춘숙 "데이트폭력·스토킹 처벌 위한 법안 필요"

(연쇄인터뷰-20대국회 당선자의 각오)이것만은 꼭!
"기본소득·장애인 문제 등에도 관심"

입력 : 2016-05-17 오후 3:44:42
[뉴스토마토 최한영기자]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13번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정춘숙 당선자는 선거 다음날 새벽까지 개표 방송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당선이 안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정 당선자는 16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직전 지역에 전화를 돌려보니 정말 상태가 나빴다. 쉽지 않아 보였다”며 “다음날 수업도 있고 해서 마음의 정리를 하고 개표방송을 안 보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밤을 샜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렵게 당선된 만큼 여성인권 보호 등 의정 활동 각오가 남다르다.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출신인 정 당선자는 “일부 개선되기도 했지만 여성에 관한 안전망이 잘 갖춰져있다고 볼 수 없다”며 “현재 계류 중인 스토킹방지법의 경우에도 19대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2월14일 더민주에 입당할 때 일성이 “한국여성의전화 정춘숙입니다”였다. 정 당선자의 국회 입성이 여성인권 향상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듯 하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3년간 상근하며 다양한 여성정책을 제안해왔다. 가정폭력방지법 수립 과정에서 1998년 시행령·시행규칙 발표까지 총괄하는 실무자 역할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의도와 다르게 법이 만들어지거나, 제안된 좋은 정책이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4~5년 전부터 ‘정책이 아니라 정치가 문제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치로 해결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회에 들어오면서 우선 성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국가에서 여성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여성노동 관련 정책은 많이 있지만 여성폭력 등 인권에 관련된 정책은 부족하다. 특별히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라도 여성평등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오랜 기간 현장에 있으면서 본 현실에 입각한 정책을 가지고 사회를 바꿔보고 싶다.

 

- 입당 기자회견문에서 ‘과연 우리사회에 정의가 존재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1993년 경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한 고등학생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어머니가 이전부터 신고를 많이 했는데 그 때마다 경찰은 ‘집안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어머니가 ‘그런 일로 연락하면 혼날 줄 알라’는 말까지 경찰에게 들었다. 가해자는 그날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장면을 보고 우발적으로 칼로 찔렀던 것이었다. 이 학생에게 검사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어머니가 법원 앞에서 “그동안 신고를 하면 집안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아무도 안 도와주더니, 내 남편을 내 아들이 죽인 집안일인데 왜 잡아가느냐”고 울부짖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사회에 정의가 존재하나. 정의가 뭔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년 넘게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남편을 죽인 아내에 대해서도 정당방위가 인정된 적이 없다. 반면 폭력을 휘두른 남편으로 인해 아내가 죽어도 살인죄 적용이 안 된다. 기껏해야 상해치사다.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에 대한 합당한 조치가 없고,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처벌을 받는 것을 정치를 통해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여성인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제도가 있다면.

 

지난 주 이주여성인권센터를 찾았을 때 이주여성상담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았다. 국내 거주 이주민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인데 결혼한 사람 외의 이주여성이 도움을 받는 제도는 부족하다. 우리나라 이주여성 정책은 기본적으로 결혼과 관련된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폭력이나 임금체불 등이 일어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가정폭력·성매매 피해를 입은 여성을 지원하는 방식이 다른 사회복지서비스를 받는 것과 똑같이 되어있다는 점도 해결돼야 할 과제다. 예를 들어 쉼터에 온 가정폭력 피해 여성은 자신의 신상정보를 입력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들에게 자산조사 등을 하면 가족으로부터의 스토킹 피해가 우려된다. 스토킹으로 인한 최대 피해는 가족으로부터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맹점들을 해결해야 한다.

 

- 관심을 두고 있는 법안은

 

데이트폭력이나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토킹방지법을 제정하려고 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의 경우 가해자 처벌보다는 보호처분 중심이라는 문제가 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방법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이미 입증됐는데 이를 참고해 만든 것이 문제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스토킹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예방적 측면에서 법적 개입이 필요하다.

 

- 여성 문제 외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약자 보호에 관련된 분야다. 기본소득(재산·노동 유무와 상관없이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 문제나 장애인, 노인 문제 등이다. 더민주가 가장 많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현행 건강보험 부과체계를 바꾸는 문제인데 나도 열심히 해보려 한다. 그래서 상임위는 보건복지위원회를 희망하고 있다.

 

- 낙선자들에 대한 당의 배려, 관심의 중요성도 강조했는데.

 

경남 양산에서 41.6%를 얻고 낙선한 송인배 후보를 최근에 만났다. 송 후보가 “높은 파도를 타고 빠른 속도로 나가는 배가 모래바닥에 쳐박힌 기분”이라는 말을 하더라. 그분 말고도 낙선자들의 정신적인 충격이 정말 크지만 중앙당에서 위로하는 뚜렷한 움직임은 없어보인다. 그분들도 당의 훌륭한 자산 아닌가. 이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봐서 그런 말을 했다.

 

- 4년간 의정 활동에 나서는 각오는.

 

여·야 초선의원 연찬회 때 헌정기념관에서 의원회관으로 이동하는데 버스가 마련된 것을 보고 몇몇 당선자들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몇 사람은 밥 먹고 돌아갈 때 걸어갔다. 나중에 보니 특권의식이라는 비난을 받았더라. 사람은 변한다고 하는데, 의원에게 주어지는 특권·권력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점을 되새기고 있다. 적어도 두 달에 한 번 현장 방문을 하며 현안을 청취하고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정책들을 입안할 생각이다.

 

국민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 지난주 더민주 당선자 워크숍 때 개원 첫 이틀(5월30·31일) 세비를 모아 빚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악성 채권을 매입·소각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워크숍에 모인 더민주 당선자들이 흔쾌히 찬성해주는 것을 보며 당의 힘을 느끼는 한편 의정 활동의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다. 

 

◇ 정춘숙 당선자 약력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대법원 양형위원회 자문위원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당선자가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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