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원석기자] 전문화와 세분화, 분업화 전략은 아웃소싱과 함께 오픈이노베이션을 꼽을 수 있다. 핵심역량 집중이라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지만 개념이 다소 다르다. 개방형 혁신으로 불리는 오픈이노베이션이란 외부 파트너와 기술 또는 지식을 공유하는 전략을 말한다. 아웃소싱의 경우 사업 방향이 한쪽으로 일방적 흐른다면, 오픈이노베이션의 경우 양쪽의 흐림이 순환하는 형태다. 아이디어와 기술을 공유해 같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한미약품(128940)이 최근 R&D모델로 오픈이노베이션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내 제약업계에 화제로 떠올랐다. 손지웅 한미약품 부사장은 지난 1월 열린 '제1회 한미 오픈이노베이션 포럼'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한미약품은 앞으로 유망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기 위해 자사의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파트너사와 공유하고 외부수혈도 감행하겠다는 의미다.
한미약품이 지난해 성사시킨 8조원 규모의 신약 기술수출도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의 일환이다. 파트너사는 일라이릴리,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아벤티스, 얀센 등 글로벌 제약사다. 이들 글로벌 제약사는 한미약품과 손잡고 이들 약물에 대한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미약품의 신약후보물질과 글로벌사의 자본력을 합쳐 공동연구를 하는 형태다.
국내 업계에선 한미약품의 오픈이노베이션 공표가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는 분위기다. 어깨를 나란히 하던 한미약품이 멀찌감치 나아가버린 이유도 있지만 국내외, 글로벌사, 벤처기업, 연구소 가리지 않고 손잡겠다는 개방형 R&D 모델이 그동안 국내 제약업계 풍토와는 상반되기 때문이다. 개방형 R&D가 수평적 구조라면, 국내 제약업계 사업구조는 수직적이다.
1950년대 우리나라에 근대적 제약산업이 출현한 뒤 파트너사와 협업 형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제약업계 환경은 폐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사업방식이 고도의 기술력이나 대규모 자본을 요하지 않는 복제약 위주여서 협업의 필요성이 낮았다. 속도전이 중요한 의약품 시장 특성상 전략 노출의 우려도 있었다. 진보성이나 혁신성을 갖춘 신약후보물질도 없어 특별히 오픈이노베이션이 필요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대학연구소나 제약벤처와 협업을 검토하면 오너가 우리 연구소는 뭐하고 외부에서 찾느냐라고 핀잔을 듣기 일쑤"라며 "오너가 회사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보수성 때문에 오픈이노베이션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 상황과는 달리 1개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각기 다른 회사가 뭉치는 것은 최근 글로벌 트렌드다. 이런 변화는 '신약가뭄' 탓이다. 글로벌사들은 R&D 효율성을 위해 바이오벤처, 로컬 제약사, 대학 연구소 등 외부에서 신약후보들을 찾기 시작했다. 전세계 연구소나 벤처기업과 교류하면서 혁신적인 신기술을 발굴했다. 유망한 신약후보물질과 신기술은 다시 본사가 기술을 검토한 뒤 협업을 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일부 국내 제약사들도 빗장을 풀고 경계허물기에 나서는 분위기다. 의약품 내수 시장의 성장률이 둔화되자 신약개발과 해외진출로 돌파구를 찾기 시작한 데 따른 변화다. 글로벌에서 신약으로 성공하려면 혁신성과 진보성이 중요하다. 해외에 진출할 유망 신약후보물질을 찾는데 분주한 양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픈이노베이션은 신약가뭄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외부의 기술을 활용해 연구개발 비용을 줄이면서 R&D 생산성은 늘어나는 개방형혁신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오픈이노베이션이 성공하려면 파트너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동등하게 수평적 구조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지웅 한미약품 부사장이 지난 1월 열린 '제1회 한미 오픈이노베이션 포럼'에서 향후 R&D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