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목숨을 건 '바다수영'으로 에게 해를 탈출한 난민소녀가 올림픽 수영장에서 아름다운 접영을 선보였다. 옆 레인 선수와 경쟁이 필요 없는 자신만의 도전을 펼쳐 올림픽 정신을 새삼 일깨웠다.
시리아 출신의 '난민소녀' 유스라 마르디니(18)가 7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의 아쿠아틱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수영 여자 100m 접영 예선에 참여했다. 마르디니는 올림픽 오륜기와 난민팀을 상징하는 'ROT(Refugee Olympic Team)가 새겨진 수영모를 쓰고 1분08초51로 터치패드를 찍어 1조 5명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예선 전체로 보면 45명 중 41번째에 불과해 16명이 올라가는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심지어 마르디니의 기록은 전체 1위를 차지한 사라 셰스티룀(스웨덴·26초33)보다 12초95나 뒤진 기록이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 후 마르디니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마르디니는 영국 언론 BBC와 인터뷰에서 "올림픽 참가는 내가 유일하게 원했던 것이다. 모든 게 놀라웠다. 세계적인 챔피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참가 자체가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마르디니는 다른 선수와 경쟁하되 정정당당한 도전과 과정을 중시하는 올림픽 정신을 그대로 실현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번 대회에서 사상 최초의 난민팀을 꾸리면서 마르디니는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뤘다. 마르디니는 이번 대회 여자 접영 100m와 여자 자유형 100m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3월 마르디니가 리우올림픽 출전 의사를 밝히면서 그의 앳된 외모와 상반된 안타까운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사실 마르디니는 안정적인 수영 선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수영 코치인 아버지에게 3살부터 수영을 배웠으며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지난 2012년에는 15살의 나이로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며 수영을 위해선 바다를 건너 조국을 떠나야만 하는 위기에 처했다. 하루가 멀다고 총성이 오가며 생존조차 위협받는 나라 안에서 수영 국가대표를 꿈꾸는 건 사치였다.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수영과 올림픽 출전을 위해선 '바다 수영'으로 나라를 탈출해야 했다.
마르디니는 언니 사라와 함께 시리아를 탈출하기 위해 지난해 8월에 에게 해를 건넜다. 당시 7명이 겨우 탈 수 있는 보트 하나에 마르디니 자매와 친척 2명을 포함한 20명이 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탑승 인원을 초과한 보트는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바다 한가운데서 물이 찼다. 하는 수 없이 수영할 줄 아는 마르디니 자매와 일행 2명이 바다에 몸을 던져 한쪽 팔은 배에 달린 밧줄을 잡고 한쪽 팔로는 수영하듯이 노를 저어 물살을 갈랐다.
생존을 건 불완전한 수영은 그렇게 3시간 넘게 이어졌다. 살기 위해 사력을 다한 수영 덕분에 다행히 아무도 실종되지 않고 마르디니 자매와 난민들 전부 그리스 국경에 도착했다. 마르디니는 "그날 이후 바깥에서 수영하는 게 정말 싫어졌다"고 당시의 절박함을 돌아봤다. 이후 마르디니는 언니와 함께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에 정착했다. 그 결과 이번 올림픽에 난민팀 일원으로 출전하는 꿈을 이뤘다.
마르디니는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우리 난민팀을 보며 꿈을 되찾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에겐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총성이 오가던 고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꿈이다. 마르디니의 도전은 오는 12일 열리는 여자 자유형 100m에서도 이어진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7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의 아쿠아틱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여자 접영 100m 예선에서 난민대표팀의 유스라 마르디니가 역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4일(한국시간) 리우올림픽 선수촌 입촌식에서 난민대표팀의 수영 선수 유스라 마르디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