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효정·김응태 기자] 정부의 '안전진단 강화' 규제 카드가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단지들의 운명을 갈랐다. 가까스로 규제를 피한 구로주공아파트는 재건축에 청신호가 켜졌다. 목동신시가지 아파트는 규제 암초에 걸려 재건축이 막막하다. 정부는 무분별한 재건축을 잡겠다고 나섰지만, 시행을 서두르며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목동 아파트 주민들은 법적소송과 대규모 집회를 불사하겠다며 논란의 불을 지폈다.
21일 기자가 찾은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구로주공아파트단지. 곳곳에 '경축, 재건축 안전진단 실시'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만나는 주민들은 "무리 없이 재건축이 진행될 것"이라고 환한 표정이다.
구로주공아파트는 정부가 지난달 20일 재건축 사업 기준을 한층 강화한 안전진단 개정안을 발표한 직후 정밀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시행 여부를 판정하는 첫 단계다. 예비안전진단을 거쳐 정밀안전진단을 위한 용역 작업을 거친다. 구로주공아파트는 신청 후 일주일 만에 용역업체와 계약까지 마무리했다. 강화된 기준안이 시행되기 하루 전(영업일 기준)이었다.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단지는 규제 강화 전 기준으로 오는 6월5일까지 안전진단이 진행된다. 결과에 따라 재건축 시행 여부가 최종 판가름 난다. 재건축 연한인 30년이 지난 만큼 무리 없이 시행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달 초 예비안전진단에 통과했고, 정부가 발표한 이후 발빠르게 움직여서 가까스로 막차를 탔다"며 "주민 모두 숨죽이고 기다렸는데 계약 체결도 마지막 날 저녁 무렵에 이뤄져 기쁨이 더 컸다"고 했다.
반면 구로주공아파트에서 5Km 남짓 떨어진 목동신시가지아파트의 분위기는 180도 달랐다. '아마추어 주택정책, 김현미 장관은 사퇴하라', '재산권 침해하는 이 정부는 각성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있다.
목동신시가지 14개 아파트 단지는 1986년 구로주공과 같은 시기에 입주를 시작했다. 연한 30년이 넘은 만큼 재건축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정밀안전진단 절차에 이르지 못했다. 정부의 새로운 규제 발표 이후 14개 단지가 급히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했지만 정밀안전진단 의뢰까지 진행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호소한다.
그러면서 재건축 추진 동력을 잃었다. 안전진단 통과가 어려워진 주민들은 수억원 용역비를 날릴 우려가 커졌다. 그래서 더욱 정밀안전진단 신청엔 속도가 나질 않는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재건축을 인정받으려면 용역 계약 후 진단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통과되지 않고 용역비만 손해 볼 가능성이 있다"며 "전체적으로 재건축 추진에 크게 동하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의 행정예고 기간이 평소보다 짧았다며 '졸속행정'을 문제 삼는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목동 신시가지아파트단지 주민으로 구성된 양천발전시민연대는 "졸속으로 안전진단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문제"라며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다. 오는 29일에는 양천구민회관에서 '안전진단 강화 개정안 정상화를 위한 긴급 토론회'도 연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지난달 야당 중심으로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 법안을 발의한데 이어 지난주 여당에서도 규제 완화 개정안을 별도 발의했다.
임효정·김응태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