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우리는 여전히 여기서 산다

입력 : 2018-11-19 오전 8:00:00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각자 다른 대기업 건설사 직원이었다. 그분들은 항상 한 손에 선물을 들고 찾아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는 '선생님', '사장님'으로 불렸다.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조합 관련 일로 바빠 보이셨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 밤마다 나누고 계셨다. 가장 많이 들린 단어는 '뉴타운', '부동산', '재개발'이었다. 뉴타운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 모습의 동네가 완전히 사라지고 이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선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서울시 낙후지역 재정비 계획에 의해 서울시는 뉴타운 열풍에 휩싸였다.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2005년 국내 최대 규모의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었다. 낙후된 동네 장위동은 순식간에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 뉴타운 구역 지정 이후 장위동은 총 15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개발이 추진되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놀이동산 드림랜드가 헐리고 2009년 시민공원 북서울 꿈의 숲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의 돌연 사퇴와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서울시 뉴타운계획에는 제동이 걸렸고, 2014년 내가 사는 장위12구역은 장위13구역과 함께 장위동 15개 구역 중 가장 먼저 뉴타운 구역에서 해제되었다.
 
나는 뉴타운 열풍을 굉장히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들이 헐리고, 그 자리에 2~3년 만에 브랜드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저녁 산책을 할 때면 넓은 판자촌 아래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선명한 조명 아래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낡은 판자촌에서는 그곳이 자아내는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종종 영화, 드라마 촬영이 이뤄졌다. 이곳에는 현재 714가구의 브랜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집에는 내가 아주 어린 시절 드림랜드를 배경으로 찍힌 사진들이 여럿 있다. 초등학교 때에는 드림랜드 수영장으로 단체 소풍을 갔다. 부동산과 관련한 경제관념이 전무했던 나에게 뉴타운, 재개발 계획은 친밀함이 깃든 '사는 공간'의 허물림을 의미했고, 눈앞에 있는 익숙한 풍경들이 곧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씁쓸한 마음이 들게 했다.
 
나와 달리 부모님에게 뉴타운은 지금까지의 고단한 삶을 한순간에 풍요로이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고, 희망이었다. 부동산 가치가 거의 없었던 낡은 우리 집이 수익성이 좋은 상품으로 거듭나자 어머니와 아버지는 빠듯한 현재의 생활을 완전히 접고 새집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계셨다.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장위동의 한 곳이 옛날 삼성의 소유였다는 말이 돌았다. 장위동은 실제로 60~70년대 주택단지 개발에 힘입어 한때 부촌으로 거듭난 곳이었으니 그런 소문이 있을 법도 했다. 이후 더 이상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낡아버린 우리 동네가 다시 부자동네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나도 궁금했다. 유독 언덕이 가파른 장위동이 평지가 될 것이라니 가히 신기했다. 이는 장위동에 살고 있는 많은 어른들의 꿈이기도 했다. 낡은 집은 고단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그들은 재개발을 통해 이러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요하고, 낡은 우리 동네가 활기를 찾은 듯했다.
 
부풀었던 꿈이 한순간에 터져 사라졌다. 장위12구역이 재개발 구역에서 해제되었을 때 부모님의 실망감은 내 눈에 확연히 비쳤다. 집에는 다시 건설사 직원이 찾아오지 않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에서 '뉴타운'은 완전히 지난 일이 되어 있었다. 2011년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개발 구역 토지 소유자 3분의 1 이상의 신청으로 진행한 주민투표에서 조합원의 50%가 찬성하지 않으면 재개발 구역 해제절차를 밟았다. 2018년 현재까지 반 이상의 재개발 구역들이 해제되었다. 장위12구역은 2014년 재개발 구역에서 해제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재개발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이 넘는다는 말이었다. 이는 뉴타운이 누군가에게는 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난 2월25일 재개발이 확정된 장위4구역에서 한 공장 세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터무니없이 적은 이주보상금으로는 다른 곳에서 자신의 생업을 이어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생업뿐 아니라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이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장위12구역 재개발은 주민투표에서 과반 찬성을 얻지 못했다. 누군가의 생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불도저식 재개발의 폐해는 2009년 용산참사에서 여실히 확인된 바 있다.
 
재개발은 주민들에게 저마다 다른 의미가 되고, 이것이 때로는 격렬한 갈등으로 치닫기도 했다. 한동안 희망으로, 갈등으로 북적였던 장위동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러나 주민들은 동네를 작게나마 변화시키려 한다. 우리 집은 그대로지만 어느샌가 주변에 작은 규모의 공사가 늘었다. 단독주택이 헐리고, 그 자리에는 빌라가 세워졌다. 공영주차장이 준공되기도 했다. 교복점을 운영하는 아저씨가 살던 옆집이 헐리고 그 자리에 다른 가족을 위한 새로운 단독주택이 지어졌다. 얼마 전 오랜만에 찾은 동방고개에는 꼭 들러보고 싶은 작은 카페, 이자카야, 수제버거집이 몇 곳 생겨났다.
 
실망은 이제 과거의 일이긴 하나 아버지는 아직 아쉬워하신다. 요즘 당신께서는 자꾸 이리저리 문제가 생기는 40년 된 주택에 들어가는 보수비용을 마주할 때마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재개발을 그리워하신다. 높은 보수비용에 투덜대면서도 이제는 여기서 살아가는 것에 제법 정을 붙이신 모양이다. 지금 사는 집을 어떻게 리모델링할 수 있을지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신다. 장위동은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더 잘 살아갈지 궁리하고 있다.
 
오지혜 바람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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