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의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연말시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북미 간 긴장은 오히려 더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셈법을 바꾼다는 보장없이 문 대통령에게 이러한 역할을 촉구하는 것은 '비현실적 요구'라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을 향해 "적대적 방식으로 행동하면 잃을 것이 너무 많다"며 "사실상 모든 것(을 잃게될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북한이 전날 동창리 미사일발사장으로 불리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했다며 대미 압박 수위를 높인 것에 따른 대응이다.
북한의 '중대한 시험'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의 엔진 출력을 높이는 실험일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미국 측은 ICBM 발사 현장의 동향을 위성으로 파악했고 이를 CNN이 보도 했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중대한 시험' 발표 이전에 문 대통령에게 통화를 요청했고 이 과정에서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나 "그(김 위원장)와 한국의 관계가 매우 좋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문 대통령에게 중재자 역할에 나서달라고 요청한 것이란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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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적대적 행위를 막기 위해 문 대통령에게 중재를 부탁했지만 결정적 카드를 제시하지 않은만큼 문 대통령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은 9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특사를 보내든지 메시지를 보내 달라는 이야기 같다"며 "그런데 지금 미국이 셈법을 바꾼다는 보장이 없으면 북한은 입장을 못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부의장은 "문 대통령이 역할할 수 있는 한계는 뻔하다"며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선언에서 합의했던 것들을 미국의 견제로 이행하지 못했다. 북한은 이걸 보면서 한국 정부에 기대를 접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북한을 달래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비현실적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결정적 카드'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그는 특히 북미협상이 올해 연말까지 진척되지 않을 경우를 가정, "(북한은) 우리는 핵 강국에 이어서 ICBM 강국, 대륙간탄도미사일도 강국이 됐기 때문에 이제는 협상 안 한다. 협상하려면 ICBM도 있고 핵폭탄도 가지고 있는 나라들끼리만 만나자라는 식으로 나올 것"이라며 "미국·러시아·중국·북한, 이 네 나라의 동북아 지역에서의 핵군축협상을 하자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행동과 관련해선 그 가능성을 낮게봤다. 정 부의장은 "경제제재나 압박을 더 강화한 거 아니면 군사행동인데 군사행동은 어차피 못 한다"고 단언하며 "한반도에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군사행동을 하게되면 그 불똥이 중국 대륙으로 튈 수 있다. 그걸 트럼프가 모를리가 없다. 그래서 겁은 주지만 행동은 못 옮긴다는 것이 피차 아는 바"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중재자' 역할을 요청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새로운 셈법' 제시없이는 그 역할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뉴시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