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61건의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법안들이 해당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에 계류돼 있다. 즉각 분리제도 시행, 아동학대 범죄 처벌 강화 등의 법안이 이미 발의됐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입법 절차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제때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면 '정인이 사건'(양천 아동학대 사건)을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5일 <뉴스토마토>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법안은 총 61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30건과 아동복지법 개정안 16건, 민법 개정안 6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2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2건, 형법 개정안 1건,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1건, 자율방범대 설치·운영 법안 1건, 사법경찰관리 직무 수행 법안 1건,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1건 등이다.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고 정인 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정 양의 그림이 놓여 있다. 사진/뉴시스
상임위에서 계류 중인 아동학대 방지 법안의 내용을 보면 피해 아동 보호를 위한 경찰과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권한을 강화한 법안이 9건, 아동학대 범죄자의 형량 상향 등 처벌 강화에 대한 법안이 7건, 피해 아동을 보호시설로 인도해 학대행위자와 분리하는 법안이 5건, 친권자의 징계권을 삭제하는 법안이 5건, 아동학대 예방 교육 실시 법안이 5건, 피해아동에 대한 응급조치기간을 168시간으로 연장하는 법안이 2건,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 의무를 강화하는 법안 2건 등이 있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법,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는 여야 모두 공감한다. 21대 국회는 아동복지법 등 26건의 아동학대 방지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성과는 거기까지였다. 이번 국회에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단 한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아동학대 방지를 다수의 법안들이 상임위에 계류되면서 또다시 '정인이 사건'과 같은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아동 보호를 위한 경찰과 전담 공무원의 역할 강화와 아동학대 처벌을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들은 현재 법사위 소위에 회부돼 있다. 일부 법안의 경우 지난해 6월초에 발의됐는데 아직까지 상임위 심사를 끝내지 못했다.
아동학대치사죄와 아동학대중상해죄의 기본형량을 대폭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현재 법안 논의는 더 이상 진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아동학대 방지 법안과 관련한) 다른 법안들도 발의돼서 묶어서 하다 보니 후순위로 밀린 것 같다"고 밝혔다.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아동학대 사건에 관해서 사회적 관심사가 높아지면서 (법사위에서) 좀 우선적으로 처리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법사위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의에 주력하다 보니 다른 법안 심사가 늦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사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에 대한 사회 관심이 컸고. 제정법이다 보니 심의하는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상황이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법안 심사가) 늦어졌다"고 밝혔다.
최근 '정인이 사건'으로 인해 '즉각 분리제도'의 도입에 대한 정책이 주목받고 있지만 국회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앞서 '정인이 사건'의 경우 어린이집 교사 등이 세 차례 신고했음에도 경찰 조사 단계에서 피해 아동을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점에서 학대 아동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부는 올해 3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지만 조치를 어겼을 때 처벌 내용은 없다.
분리조치 이후 처벌까지 규정한 법안으로는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제출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있다. 당시 고 의원은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법안 상정을 위한 전체회의가 있을 때 직접 상임위를 찾아가 법안 제안 설명을 하며 처리를 호소했다. 고 의원 측 관계자는 "좀 잘 처리될 줄 알았는데 저희 상임위가 아니다 보니 힘을 덜 받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치권에서는 뒤늦게 오는 8일까지 아동학대 방지 법안을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사건이 터진 뒤에야 대책 마련에 부산한 모습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