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이 확정됐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구회근)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국고 등 손실)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 전 원장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이병기 전 원장은 징역 3년, 이병호 전 원장은 징역 3년 6개월에 자격정지 2년이 선고됐다. 국정원장 지시로 특활비를 전달한 혐의를 받는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법정구속은 없었다.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피고인들이 소극적으로 응한 것이고 개인적으로 유용할 목적이 없으며, 이전 정부에서도 국정원 자금이 청와대로 전해지는 관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국회에서 확정된 국정원 예산을 불법으로 은밀히 대통령에게 전한 행위에 대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사건의 쟁점은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인지 여부였다. 국고 등 손실죄는 회계관계직원이 국고에 손실을 입힐 것을 알면서 횡령하거나 제3자가 이득을 취하게 할 경우에 해당한다. 1심은 뇌물 무죄, 국고손실 유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국정원장이 감독하는 장일 뿐 회계관계직원이 아니라고 봤다. 반면 대법원은 국정원장을 회계관계직원으로 보고 국고손실 혐의를 재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파기환송 취지대로 이들이 회계관계직원이라고 판단했다. 남재준 원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 6억원을 보낸 혐의, 김용환 현대차그룹 부회장에게 전직 경찰관 단체인 경우회 지원을 강요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재판부는 남 전 원장이 다른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돼 복역중인 사정을 참작해 형량을 기존 2년에서 6개월 줄였다. 그는 박근혜 정부 당시 검찰의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와 재판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돼 2019년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강요죄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지만,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상고심에서 해당 혐의를 무죄 취지로 판단한 점을 참작했다.
반면 이병기·이병호 전 원장 형량은 원심의 징역 2년 6개월에서 각각 6개월과 1년이 늘었다. 이병기 전 원장은 특활비 8억원 상납 외에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에게 격려비 명목으로 1억원,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에 3200만원을 주는 등 9억3200여만원 국고손실과 뇌물, 업무상 횡령이 인정됐다.
이병호 전 원장의 국고손실액은 27억5000여만원이다. 재판부는 그가 기존에 건넨 특활비 19억원 외에 2016년 9월 전한 특활비 2억원를 뇌물로 봤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준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은 국정원법상 정치관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형량이 가장 높아진 이병호 전 원장은 재판 직후 상고 여부를 묻자 "당연히 상고할 것"이라고 답했다.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원장은 재임 시절 배정된 특수활동비로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각각 6억원, 8억원, 21억원을 지원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해당 특활비는 박근혜 청와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병기(왼쪽),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특활비 상납' 관련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14일 서울고등법원 재판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