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국정농단 뇌물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실형을 선고받을 지 여부가 관심을 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양형에 삼성준법감시위원회 평가 등을 반영해 집행유예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내다본다.
이번 선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다른 사건의 최종심 판단은 이미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 14일 국정농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비선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와 공모해 삼성 등 대기업들로부터 최씨 재단과 그의 딸 정유라 씨 승마 지원금을 받아낸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뇌물공여 등 혐의와 관련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대법원이 확정한 이 부회장 뇌물공여액은 86억원이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1억원 이상 뇌물공여 기본형은 2년 6개월~3년 6개월이다. 가중처벌 시 징역 3~5년이다. 형법상 집행유예 가능 범위는 징역 3년 이하다. 수뢰자가 적극적으로 요구해 마지못해 응했다면 감경요소가 된다. 부정한 청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줬다면 가중된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 5년을 구형했다.
하급심은 이 부회장 뇌물 규모와 적극성 여부를 두고 엇갈린 판단을 내려왔다. 전체 뇌물액은 정씨에 대한 승마 지원금이 좌우했다. 1심에서 이 부회장 뇌물액은 특검이 주장한 298억2535만원 중 89억2227만원이 인정됐다. 정씨 승마 지원금 72억9427만원에 한국동계스포츠영제센터 지원금 16억2800만원을 합친 액수다.
미르·K재단 출연금 204억원이 뇌물이 아니라는 판단은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삼성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사회협력비 분담비율’에 따라 수동적으로 출연했고, 승계 작업을 묵시적으로 인식하고 낸 돈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1심은 이 사건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으로 규정하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이 부회장 뇌물 성격이 수동적이라고 보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3484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뇌물·횡령액을 무죄로 판단했다. 정씨 승마 지원금 중 말 구입비와 부대비용 41억6251만원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용역대금과 마필, 차량에 대한 ‘무상 사용 이익’을 뇌물로 인정했다.
2심은 박 전 대통령이 삼성 경영진을 겁박하고 최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삼성이 수동적으로 뇌물을 공여했다고 판단했다.
이재용(왼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가 지난 12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10차 공판에 각각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법원은 1심에 가까운 판단을 내렸다. 부대비용 수십억원을 지우고 마필과 차량 무상 사용 이익을 뇌물로 본다는 2심 판단은 법리와 상식에 맞지 않다며 파기했다.
파기환송심은 양형 판단 기준으로 삼성의 새로운 준법감시 체제를 꺼내들었다. 형량 감경 요소인 ‘범행 후의 정황’을 다시 보겠다는 의미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가 ‘총수도 두려워할 준법체제’ 마련을 요구하자, 삼성은 지난해 1월 대법관 출신 김지형 변호사를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에 앉혔다.
이후 재판부가 추천한 강원일 전 헌법재판관, 특검이 추천한 홍순탁 회계사, 이 부회장이 추천한 김경수 변호사가 전문심리위원으로 참여해 준법위를 평가하고 12월 법원에 의견서를 냈다. 강 위원은 다소 유보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준법위 지속성은 총수 의지에 달렸다고 결론 냈다. 홍 위원과 김 위원의 평가는 부정과 긍정으로 극명히 갈렸다.
재판부는 지난달 21일 공판에서 전문심리위원단의 준법위 평가에 대한 양측 의견을 듣고, 양형 반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제시한 삼성의 새로운 준법감시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볼 것인지, 이를 양형조건으로 고려할지, 만일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고려할지는 모두 재판부의 판단 대상”이라며 “다만 양형 조건으로 고려해도 여러 양형조건 중 하나이고, 유일한 양형 조건이라거나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양형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처음부터 집행유예를 염두에 두고 준법감시 체제 마련을 주문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부가 집행유예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며 “안 하려면 굳이 준법위를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