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평화적(혹은 위압적)인 방법으로 타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이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는 국제사회에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상대방에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도 불린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한민족이면서 휴전상태인, 상호 상대방을 정식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특수 관계'인 것 등을 감안하면 통상 국가와의 외교관계보다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야당과 일부 보수언론은 지난 2018년 '4·27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USB메모리로 전달한 '한반도 신경제구상' 자료에 북한 내 원전 건설 추진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은 이를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행위"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사실 북한 원전건설 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풍부한 우라늄 자원이 있지만 만성적인 전력부족에 시달려온 북한은 1960년대부터 원전 개발에 공을 들였다. 이후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에 원전을 제공하자는 아이디어는 자주 제기됐고, 그것이 구체화 된 것이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이고, 1995년 출범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다.
비록 2001년 미국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됐지만, 비슷한 아이디어는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 시절에도 종종 검토된 카드다. 북한에 원전건설을 지원한다는 논의 자체를 '이적행위'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오히려 북한의 비핵화 촉진을 위해 보다 구체적인 원전건설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 '가능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끝으로 현재 문제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의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보고서를 소개할까 한다. 본문 4쪽, 참고자료 2쪽 등 총 6쪽 분량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에는 크게 △북한 내 원전 건설 △비무장지대(DMZ) 원전 건설 △신한울 3·4호기 완공 후 북한에 송전하는 방안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보고서 서문에는 '동 보고서는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님'이라고 명시했고, 결문에도 '북-미간 비핵화 조치 내용·수준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높아 구체적 추진방안 도출에 한계가 있으며, 향후 비핵화 조치가 구체화된 이후 추가검토 필요'라고 적었다. 현실적으로 당장 추진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6쪽짜리 내부 보고서에 '이적행위' 운운하며 호들갑을 떤 일부 정치세력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다.
이성휘 정치부 기자(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