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복수가 드라마에 등장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현실의 법으로는 단죄하지 못하거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인물들을 드라마에서는 시원하게 처단하는 것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지 시청률도 꽤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들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 옛날처럼 권선징악이라는 대전제는 변하지 않았는데 권선징악의 실행 방법이 예전 같지 않다. 과거에는 악은 밉지만 악을 단죄하는 방법은 악인을 법의 심판대 앞에 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악을 직접 처단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현재 SBS 채널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모범택시’를 보자. 연출된 이야기라고는 하는데 누가 봐도 사건과 인물을 특정해서 소재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드라마가 모티프로 한 그 인물은 지금도 재판정에서 죄의 경중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으나 드라마에서는, 죽인다.
인기리에 종영한 ‘빈센조’라는 드라마는 아예 ‘악을 악으로 처단한다’를 내걸었다. 마피아 출신 빈센조는 빌런을 그냥도 아니고 고문하는 방식으로 죽였다.
시청자들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결말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무엇이라? 사람 죽이는 것에서 대리만족한다고? 아마 그런 것 같다.
분노가 쌓여가는 사회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가히 ‘화(火) 공화국’이라고 부를 만하다. 기본적으로 직장, 학교,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늘고 있는데,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화를 돋운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시선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써서 독자들의 화를 부채질한다. 코로나19 상황에 별 것 아닌 일도 별 것으로 만들어낸다. 마스크 쓰고 사는 날들이 길어져 짜증만 나는데 이걸 풀 길이 없으니 자꾸 쌓여만 간다.
쌓이는 분노를 배출할 방법이 없으면 사달이 난다. 분노가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주차와 끼어들기로 큰 싸움이 나고 층간소음 때문에 칼부림을 하고 택시기사를 폭행하고 연인을 살해한다. 계획한 범죄가 아니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벌어진 사건사고 소식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문제가 된 남성혐오 표현도 기저엔 오래된 여성차별과 그 방편으로 발생한 미러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무조건적 화풀이로 변질되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다 누구 탓으로 귀결된다. 남성은 ‘꼴페미’ 탓, 여성은 ‘한남충’ 탓, 20대는 ‘꼰대’ 탓, 586은 ‘요즘 것’ 탓, 주가 떨어지는 건 공매도 탓이고, 암호화폐 투기를 견제하는 발언은 정부의 무지 탓이다. 한때 유행했던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길가다 넘어져도 대통령 탓을 하던 그때는 한 사람의 이름이 욕받이 노릇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화풀이는 욕받이에게로 향한 것도 아니고 화풀이 대상이 제대로 특정된 것 같지도 않다.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오래 전 일본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사건 뉴스가 종종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사회가 발전하면 저렇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쌓이는 분노, 스트레스, 화를 줄일 수 있을까? 다른 건 잘 모르겠고, 하루 빨리 마스크부터 벗을 수 있으면 좋겠다. 멀리 여름휴가를 떠나 즐기고 돌아온 그 힘으로 1년을 버티며 사는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