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양형의 가벼움)①법감정과 형량, 좁혀지지 않는 간극

날로 흉폭해지는 범죄에 국민 분노·비판 거세
'응보주의'로 가는 국민 법감정에 양형 못미쳐
법 집행에 대한 '공평성 불신' 갈수록 부정적
학계 "국민참여재판 확대로 양형 이해 접점 넓혀야

입력 : 2021-06-14 오전 3:00:00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법관에게 있어 양형 결정은 끝없는 딜레마다. 법정형에 준해 선고형을 정하지만 국민 법감정에 한참 못미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엄벌을 외치는 국민 법감정을 탓할 수는 없다. 형벌은 신이 아닌 국회가 정하는 것이고, 입법작용의 민주적 정당성은 국민이 부여하는 것이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대법원이 양형위원회를 설치했지만 법관을 직접 구속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 법감정은 불신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뉴스토마토>가 그 원인과 대안을 모색해봤다.<편집자주>  
 
주요 재판을 맡은 법관의 선고는 극형만을 외치는 여론과 평행선을 달린다. 법원은 공정한 법 집행과 여론 재판을 원하는 법감정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지만, 비난은 멈추지 않는다. 
 
공분 일으킨 피고인에 극형 요구 빗발쳐
 
"주문. 피고인을 징역 20년에 처한다." 지난 4일 대구지법 김천지원 형사1호 법정. 3세 여아를 홀로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살인 등)로 기소된 김모씨 형량이 나오자 방청석 곳곳에서 한숨이 나왔다. 선고를 지켜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 이경미 씨는 "최소 무기징역이었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같은 상황은 생후 16개월만에 학대로 숨진 정인 양 양부모 재판,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선고 등에서도 반복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범죄자에 대한 엄벌, 특히 사형 구형과 선고 등을 요구하는 글이 게시된다.
 
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입시비리 등 혐의 유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자, 재판부 탄핵 국민청원에 45만명 넘게 참여했다. 청와대는 법관 탄핵이 국회와 헌법재판소 고유 권한이라 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은 국회의 입법과 행정부의 집행, 법원의 해석으로 작동한다. 이를 보는 국민의 '법의식'은 주요 사건에서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해 흔히 쓰이는 단어가 법감정이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지난해 펴낸 '한국인의 법의식: 법의식조사의 변화와 발전'에서 사람들이 법에 대해 가진 생각을 법의식으로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법의식은 법인식과 법감정으로 나뉜다.
 
법에 대한 외적 상황이나 정보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 법인식이다. 좋거나 나쁘다는 감정 상태는 법감정으로 풀이된다. 법의식은 법인식과 법감정, 나아가 법적 가치 판단이 결합된 법문화로 이해되기도 한다.
 
연구원은 이같은 전제로 1991년~2019년5차례에 걸쳐 진행한 조사 결과로 법의식 흐름을 살폈다. 적게는 성인 남녀 1200명(1994년), 많게는 3441명(2019년)을 면접조사한 결과다.
 
법의 공평성 인식 정도. 자료/한국법제연구원
 
'재판도 여론 영향 받아야한다'는 의식 강해져
 
국민들은 법원이 여론을 반영하면서도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의 통계에 따르면, 우선 법 집행의 공평성에 대한 인식은 점차 부정적인 흐름을 보인다. 1991년 응답자들은 68.2%가 공평하다고 한 반면, 2019년에는 15.7%만이 같은 인식을 보였다. 부정적인 평가는 같은 기간 31.9%에서 84.3%로 껑충 뛰었다. 연도별 질문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동의하느냐(2008년)', '법은 힘 있는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느냐(2019년)' 등으로 서로 달랐다. 연구원은 같은 취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법의 공정성 인식으로 묶어 풀이했다.
 
법관이 여론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도 강한 편이다. 1991년과 1994년, 2008년 조사에서 각각 79%, 77%, 76.7%가 여론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데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2019년 조사 때는 재판이 여론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지 물었는데, 그렇다는 의견이 49.7%, 아니라는 의견이 50.2%로 비슷했다.
 
이런 요구 앞에서 대법원 산하 독립기관인 양형위원회는 적정한 양형 기준을 고민하고 있다. 헌법은 법관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같은 죄를 저질러도 법관마다 형량이 천차만별이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2007년 양형위원회가 출범했다. 양형기준은 법이 아니지만, 법관이 합리적인 양형에 참고하는 기준이 된다.
 
현재 8기 양형위원회 위원장은 김영란 아주대 석좌교수다. 위원회 규모는 위원장과 법관 4명·검사 2명·변호사 2명·법학 교수 2명과 학식·경험이 있는 사람 2명 등 12명이다.
 
주요 재판 형량을 보면 양형위의 양형기준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미 3세 여아 친언니 김씨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형법상 살인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양형위는 이를 종류와 감경·가중 요소 등으로 나눠 세분화했다. 보통 동기 살인이라면 기본 징역 10년~16년이고, 가중하면 15년, 무기징역 이상이다.
 
김씨는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양형기준상 '비난 동기 살인'의 기본 형량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피해 여아가 혼자서는 제대로 된 식사와 외부 출입을 못하는 점을 알면서도 김씨가 새 남편과 살기 위해 피해자를 방치했다고 질타했다.
 
정인 양 양모 장모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상응한 책임을 묻는 한편, 피고인에게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참회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양형 이유를 말했다. 기본 양형기준이 무기징역인 경우는 '중대범죄 결합 살인'이나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에 해당한다.
 
국민의 재판 참여 기회 늘려야
 
시대에 맞는 양형기준은 계속 논의·적용되고 있다. 양형위는 지난해 12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상습 제작에 징역 29년 3개월까지 적용하는 기준을 세웠다. 피해자의 '처벌불원'은 특별감경인자가 아닌 일반감경인자로 위상을 낮추기도 했다. 이 기준은 올해 1월 기소된 사건부터 적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법원 밖에서 양형을 보는 시각은 여전히 차갑다. 학계에선 국민참여재판 확대로 국민들이 재판에 참여할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러 양형 요소를 실제 재판에서 드러난 입증 내용과 함께 봐야 한다"며 "그랬을 때 국민들의 법감정과 실제 양형이 차이가 나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을 해결할 방법이 국민참여재판"이라고 말했다.
 
무작위 추첨과 선정 과정을 거쳐 배심원이 된 사람은 사형·무기 또는 단기 1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거나 합의부가 결정한 사건 등에 참여한다. 사건에 따라 7~9명이 모인다. 이들은 사실 인정과 법령 적용, 판사의 양형 전 의견도 제시할 권한이 있다.
 
한 교수는 "배심원은 실제 재판에서 피고인의 태도와 피해자의 상황, 범행 후 정황 등을 재판부와 함께 보고 양형 기준도 살핀다"며 "그랬을 때 (배심원 판단과) 양형에 차이가 나면 이유를 연구할 필요가 있지만, 지금까지 국민참여재판에서 이 부분에 차이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현재 피고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 국민참여재판이 열리지 않아,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보탰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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