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수많은 시들 중에서도 ‘꽃’은 김춘수 시인이 전하고자 했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순간에 떠오르곤 했다. 주식시장에서도 그랬다. 신조어가 출현할 때면 으레 그 시가 생각난다.
요즘 밈(Meme) 주식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밈이라니. 처음 접했을 땐 잘못 본줄 알았다. 지난해 한창 화제를 모은 가수 비의 ‘깡’ 신드롬 때문에 다시 화제가 된 그 단어 아닌가? 단어의 정확한 의미조차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한때의 유행이나 인기로 인해 생겨나는 쏠림현상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탑골가요’처럼 먼지 쌓인 옛것에서 재미거리를 찾는 젊은이들의 놀이문화쯤으로 생각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주식시장에 이 단어가 등장했다.
밈 주식이라고 오르내리는 종목들의 면면을 보아 하니 시대를 바꿀 만한 미래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기업들의 주식이라고는 하는데, 주식시장 역사에서 그런 종목들이 한두 번 출현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한때 관심 받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밈 주식이라는 게 테마주와는 또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다. 주식시장에서는 한 해에도 몇 번씩 새로운 이름을 단 주식들이 등장했다. 금융위기 직전엔 브릭스(BRICs)를 비롯해 지역을 의미하는 신조어들이 많았고 2010년을 넘어설 즈음엔 ‘칠공주’니 ‘차화정’이니 하는 종목들이 각광을 받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해 우리 증시에서는 ‘BBIG’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2차전지, 바이오, 인터넷, 게임 등 성장산업이라는 종목들을 한데 묶어 신조어를 만들고 또 여기에 투자하는 전용 펀드까지 나왔다.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고 투자를 독려한다. 미래산업에 속한 기업들을 키우고 관련주에 투자하겠다는 건 알겠는데 과연 이 신조어가 언제까지 각광받을 수 있을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어느 영역을 모아놓은 것인지도 알기 어려운 밈 주식이 등장한 것이다.
내가 너의 이름을 그럴 듯하게 불러주니 그것에 대단한 의미가 생긴양 뭔가 더 있어 보인다. 멋진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 대상에게 실체 그 이상의 효과를 부여해 주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지난 몇 년 자산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암호화폐도 ‘화폐’라는 이름을 달지 않았다면, 비트코인이 ‘코인’이란 이름을 갖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화폐, 돈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이름이지 않은가? 환전소를 거치지 않고도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가상자산이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말이다. 각국의 중앙은행과 외환당국, 세무당국 등이 겪는 골칫거리에 관심 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주식시장에 나타났던 그 수많은 신조어들은 거의 전부 사멸했다. 1년 이상 관심을 받은 것들도 손에 꼽을 정도다. 오히려 1999년에 등장한 IT버블 당시 조롱의 의미로 이름 붙은 ‘굴뚝주’는 여전히 건재하다.
주식 세계에서 그럴싸해 보이는 밈 주식이든 고리타분한 구닥다리 종목이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이름이 삼돌이면 어떻고 에드워드 주니어 3세면 어떻겠는가. 무엇을 쥐었던 수익 내주는 놈이 장땡이다. 워런 버핏은 썰물이 되어 봐야 누가 바지를 입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다들 바지춤 꽉 잡고 계신지 모르겠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