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전략 허술…부처간 역할 정립부터 다시 해야"

(인터뷰)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국가전략기술 지정이 핵심…나머지는 불필요한 사족
배터리 산업 성숙도 높아…국가 주도 대형 R&D 무의미
인력양성은 교육·과기·고용부 역할…산업부는 외교에 집중

입력 : 2021-07-16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정부가 지난 8일 배터리 전세계 1위 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2030 이차전지 산업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핵심은 배터리를 반도체, 백신과 함께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각종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원하고 핵심인력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 선점을 위한 각축전 속에 국가가 나서 배터리 산업을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처음 선포하고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배터리 산업 개화기에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국내 배터리 분야 최고 전문가이자 정책 설계 경험이 있는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를 만나 이번 정책에 대한 평가를 듣고 정부 역할론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박 교수는 지난 2005년 참여정부 시절 산업통상부 주도로 만들어진 '차세대전지 성장동력사업단'에서 차세대 전지 로드맵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는 이번 정책을 한마디로 세계 일류 배터리 초강국 도약을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산업부가 발표한 'K-배터리 산업 발전 전략'에 대해 평가한다면
이번 전략의 핵심은 배터리를 국가핵심기술에서 국가전략기술로 격상한 점이다. 차기 정부에서 배터리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외 나머지는 다 사족이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맥락도 핵심도 없는 종합선물세트' 형태의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로드맵이 부재하고 기존 있는 정책들을 나열한 수준에 그쳤다. 추측컨대 정책이 나오는 과정에서 산학연이 각자 맡은 부분을 작성해 정부에 줬을 것이고, 정부는 이를 취합해 나열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정책을 관통하는 철학과 맥락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세부적으로 보면 정부는 현재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을 가격경쟁력과 생산능력 측면에서 100으로 두고, 중국과 일본의 경쟁력을 저평가했다. 한국을 명실상부한 배터리 1위 국가라 진단을 했으면 초격차 전략이 나와야 하지만 액션 플랜은 2~3위 국가 수준에 머문다. 차세대 전지로 꼽은 전고체, 리튬황, 리튬금속 전지 개발은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가 뛰어들었다. 실태 파악이 안됐는데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리 없다. 이 외에도 특정 이권 단체를 위한 정부 예산 지원책들도 보여 우려스럽다. 
 
대표적으로 어떤 정책이 가장 문제인가 
차세대전지 제조기술 개발을 위한 대규모 R&D 추진하겠다 했지만 시대에 맞지 않다. 이는 협회 주관하에 정부 사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업 자체 예산으로 스스로 해야 하는 부분이다. 배터리 산업 초창기 참여정부는 지난 2004년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단을 꾸리고, 차세대전지 성장동력 사업 로드맵을 그렸다. 당시 작성된 로드맵에는 기술로드맵, 차세대전지산업 로드맵, 표준화 전략 등 세부 내용이 포함됐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당시 로드맵과 비교했을 때 이번 전략은 오히려 후퇴했다. 대표적인 예가 '지능형 이차전지'를 개발하겠다는 부분인데, 전지 개발을 위해 2024~2008년 예타를 한다고 한다. 보나마나 조만간 모 관제 협회가 이것과 관련된 R&D 과제를 내놓을 것이다. 이런 전지는 세상에 없다. 실제 배터리 제조사들조차 이게 무슨 개념인지 전혀 설명을 못할 것이다. 배터리 산업 성숙도가 상당히 높아진 상황에서 국가주도형 산업기술 R&D는 불필요하다. 기업 지원책은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업계에서도 전지협회 무용론이 속속 제기돼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고도화된 배터리 산업 시대에선 더 이상 대표성과 역할이 없다는 점이다. 소재, 부품, 공정 장비, 평가 장비, 전지제조사 등 생산자를 대표하는 협회이나 관료출신 상근 부회장이 끌고 가는 관제 협회로 볼 수 있다. 협회의 역량 부족은 이미 많은 사건에서 입증됐다. 기업을 대표하는 협회로서 가령 배터리 화재라든지, 기업간 분쟁 이슈에 대해 적절한 대응 능력을 보여줘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협회가 △배터리 제조·소재 등 생산자 △사용 후 배터리 사업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사안을 다 통제하려고 한다. 능력에 비해 욕심이 과하다. 고도화한 배터리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는 마당에 각각의 맡은 역할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반드시 따로 분리 지정해 관리해야 한다. 
 
배터리 1위 국가 도약을 위한 정부의 역할의 방점은 
배터리 일류 국가의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먼저 인력 양성이다. 기초 인력과 석박사 인력 공급은 기업이 할 수 없다. 배터리 관련 기초 과학과 공학 개념이 있는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를 주관하는 부처는 산업부가 아닌 교육부, 과학기술통신부, 고용노동부다. 기업이 할 수 있는 인력양성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LG에너지솔루션(LGES, 분사 전 LG화학(051910))이 세우겠다고 발표한 LG IBT와 같은 배터리 인력 양성 기관이다. 일종의 재교육으로, 다른 전공 분야에 있는 직원들을 모아 각자 분야에 맞게 튜닝을 할 수 있다. 산업부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기업이 이같은 인재양성소를 설립할 때 이를 뒷받침 해주는 것이다. LG에 이어 삼성SDI(006400), SK(034730)이노베이등 등 나머지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 
산업부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산업외교다. 중국은 지난 2016년 ‘전기차 배터리 모범규준 인증’ 제도를 마련해 자국 업체가 생산한 배터리를 탑재하지 않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배터리 산업을 키웠다. 이때 정부가 했었어야 할 일은  배터리 국내 기업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외교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외교의 부재로 기업들이 시장진입에 실패하면서 중국 시장을 놓치게 됐다. 초창기에 들어갔더라면 중국 배터리 산업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해 우리 기업들은 정부 지원없이 각자도생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기업하기 참 힘든 나라다. 그리고 자원외교가 되레 지금 아주 중요하다.
 
배터리 산업 고도화를 위한 정책적 제안은 
뒤죽박죽인 상황이라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몇 가지만 지적해본다면 먼저 제대로된 차세대 전지 성장동력 산업기술 로드맵이 필요하다. 이 로드맵에는 모든 전략이 녹아나야 한다. 하지만 이는 단기간에 안되고 정부 조직법상 개편이 없으면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은 이는 새 정부에서 해야하는 부분이다. 정권 말에 나온 전략만큼 무용한 것은 없다. 국가전략기술 지정에서 멈췄어야 한다. 다음으로 최근 산업부 에너지 3차관 및 그 휘하 조직 개편(안)에도 ‘배터리 과’ 같은 세부 과가 빠져 있다. 향후 국가 에너지 로드맵에 있어 이차전지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참고로 과거 산업부 조직에 ‘반도체, 디스플레이’가 부서명에 들어간 적은 있지만 ‘배터리’는 들어간 적이 없고 이번에도 빠졌다. 국가전략기술로 격상된 만큼 ‘배터리 과’를 만들어 에너지 3차관 아래에 둘 필요가 있다. 이 또한 차기 정부의 숙제라 할 수 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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